우상숭배자 대통령이 통치하는 나라
윤석열 대통령과 무속신앙
버젓하게 선진국 대열에 선 대한민국의 대통령을 보고 우상숭배자라니 말이나 될 법한 일인가. 말이 안 된다. 그러나 사실이 그러니, 그것이 팩트니 어쩌겠는가. 아니 아니다. 나로선 지금도 그런지 어떤지 잘은 모른다. 그러나 대선 때 후보로서의 그는 분명히 그랬다.
그는 국민의힘 대선 후보 토론회에서 ‘임금 왕(王)’자가 쓰인 손바닥을 청중에게 펴 보이며 연설했다. 부적과도 같은 효과를 노린 것이다. 무술(巫術)의 힘을 빌려 대통령이 되려 한 것이다. 그런 게 아니라고 변명하지만, 구구하고 구차스럽기 그지없다. 저들은 그 王자를 지우려 해도 지워지지 않았다 항변하는데 속된말로 웃기는 소리다.
페인트도 아닌 기껏해야 유성 사인펜 같은 것으로 썼을 터인데, 그게 지워지지 않는다는 게 말이나 될 법한 일인가. 그건 그렇다 치더라도 보란 듯이 손바닥을 펴 그것을 청중에게 보인 일은 어떻게 설명할 것인가. 그것도 한 번만도 아니지 않는가.
그는, 윤석열 후보는 건진 법사로 불리는 무속인을 네트워크본부에서 책임자로 일하게 했다. 그 끔찍한 가죽 벗겨진 소 사체 행사로 일어난 논란의 중심에 있던 인물이다. 말이 법사지 무속인, 그것도 사이비 무속인인 것이다.
윤 후보 측에서는 건진이 자기네의 캠프와는 상관이 없을 뿐 아니라 후보와 관계가 없다고 하지만, 아니다. 윤 후보의 등을 마치 자기의 아랫사람에게라도 하듯 토닥거리는 모습이 뉴스를 타기도 했다.
국민의힘의 그 네트워크본부 사무실은 건진이 사실상 상주하며 업무를 보던 곳이었다. 그 가죽 벗겨진 소 사체 행사에 윤석열, 김건희 부부의 연등이 걸리기도 했다. 건진이 네트워크본부장이라는 논란이 일자 국민의힘은 그 조직을 해체해 버렸다. 왜이겠는가.
윤석열 후보가 우상숭배자라는 것은 그의 부인 김건희도 상세하게 설명한 바 있다. 누님동생 하는 기자와 자연스럽게 한 말이니 신빙성이 없다고 하는데, 의도적이지 않고 친하게 지내는 사람끼리 자연스럽게 한 말이니 오히려 더 신빙성이 있다 해야 할 것이다.
김건희는 자기 남편이 ‘영적인 끼’가 있다고 말한다. ‘나나 우리 남편 같은 사람들이 결혼이 원래 잘 안’ 된다며, 서로가 ‘홀아비, 과부 팔자인데. 그러니까 혼자 살아야 될 팔자인데’. 무정스님(이라는 사람)이, 맺어줘 결혼했다고도 한다.
김건희는 그 무정스님에 대해서 이렇게도 말한다.
“스님이 우리 남편 20대 때 만나가지고, 계속 사법고시 떨어지니까.…그 양반이 너는 3년 더 해야 한다. 딱 3년 했는데 정말 붙더라고요.” “그래가지고 그분이 우리 남편 검사할 생각도 없었는데 너는 검사 팔자다 해가지고, 검사도 그분 때문에 됐죠. 그분은 점쟁이 그런 게 아니라 진짜 혼자 도 닦는 분이에요. 스님처럼..”
무정 그는 스님이라 불리지만, 정식 승려는 아니다. 무속인이자 역술인이다. 김건희의 말처럼 ‘스님처럼’ ‘혼자 도 닦는’ 사람이지 진짜 스님은 아니다.
그런데 윤석열, 김건희 부부는 그런 사람을 멘토로 하여 진로와 결혼까지 그의 말을 따라 했다. 모두에서 말한 대로 나는 지금의 윤석열 대통령이 무속신앙의 신봉자인지 어떤지 알지 못한다. 그러나 대선 후보시절까지는 여기까지 살펴본 바와 같이 무속신앙의 독실한 신봉자였음이 분명하다.
용산에서 용이 났나, 용산에 용이 왔나
무속의 힘을 빌려 대통령이 되려한 것부터가 잘못된 것이다. 첫 단추가 잘못 끼워진 것이다. 이 같은 말에 고작 그런 것을 가지고 무슨 호들갑이냐고 하는 사람도 있다. 지금의 야권 거물급 정치인 중에도 무속신앙과 관련이 있는 사람이 많은데, 왜 유독 윤석열 대통령만 가지고 문제를 삼느냐는 것이다. 맞다. 우리민족, 우리국민 가운데 무속과 전혀 관련성이 없는 사람이 있는가. 있다면 과연 얼마나 될까.
나도 우리 어머니가 하는 푸닥거리에까지는 못 미치지만 무속적 행위를 보며 자랐고, 까닭에 우상이라면 그토록 증오하는 지금도 그런 찌꺼기가 마음속 어느 한 구석에 조금도 남아 있지 않다고는 장담할 수가 없다. 문제는 정도의 문제다. 국가적, 사회적 위치에 따라서도 같을 수는 없다.
인간세상의 모든 것이 정도의 문제다. 옳기만 하거나 그르기만 할 수는 없다. 그런 사람은 없다. 상대적이라는 말이다. 개개인도 그렇고 집단도 그렇다. 그러니 상대적으로 조금이라도 나으면 낫다 하고, 못하면 못하다 해야 한다. 그놈이 그놈이라 해서는 안 된다. 피장파장이라 해서는 안 된다. 그래서는 발전이 없다. 조그마한 차라도 인정할 때 조금씩이라도 발전하고 진보하게 되는 것이다. 사회고 나라고 다 그렇다.
첫 단추가 잘못 끼워진 것은 또 있다. 대통령집무실의 용산 이전이 그것이다. 윤석열 대통령은 후보시절 환경이 의식을 지배한다며 청와대로는 절대로 들어가지 않겠다 했다. 거기에 들어가는 순간 제왕적 대통령으로 찌들 것 같으니 청와대에는 단 하루도 머물 수 없다는 것이 이유였다.
그러나 인간은 환경의 영향을 받으며 살기는 하지만, 그것의 재배를 받아서는 안 된다. 인간은 환경에 순응하기도 하고 극복하기도 하며 살아가는 존재이기 때문이다. 지배를 받는 것과 순응하는 것은 다르다. 청와대로 들어가자마자 그 환경에 지배를 받아 제왕적 대통령이 될 정도의 사람이라면 일국의 대통령으로서 자격미달이다.
그러나 윤석열 대통령은 절대로 그런 나약한 인물이 아니다. 그것은 무엇보다도 당선 후의 그의 행적이 증명하고 있다. 그는 후보시절 청와대에 들어가지 않고 광화문 시대를 열겠다고 공언했다. 기회 있을 때마다 목청의 높여 공약으로 제시했다. 문재인 전 대통령도 그러겠다 공약으로 내걸었으나 난관에 부딪치자 대국민 사과를 하고 거둬들인 것을 윤 후보는 해내고 말 것이라는 국민들의 신뢰를 끌어내는 데에 성공했다. 윤석열 후보가 그 공약을 지키지 못할 것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은 거의 없었을 것이다.
그런데 청와대에 들어가지 않겠다는 공약은 성공했으나 광화문시대를 열겠다는 공약(公約)은 빌 공(空) 자 공약(空約)으로 만들어 버리고 말았다. 대통령집무실 광화문 이전 계획을 불과 사흘인가 나흘 만에 뒤집어엎고 용산 이전으로 바꿔 버린 것이다. 말리는 측근들도 있었지만 듣지 않았다 한다. 그야말로 제왕적 대통령이 된 것이다.
대통령 관저는 육군참모총장 공관으로 정했었다. 그런데 그 계획은 단 하루만에 외교부 장관 공관으로 바꿔 버렸다. 이쯤 되면 제왕적이라는 수식어로는 부족할 판이 되었다. 윤석열 대통령은 인적환경에도 어떠한 환경에도 지배 받는 사람이 아니라는 것을 그 스스로가 증명한 것이다. 환경 같은 것은 아예 무시하는 거물인 것이다.
윤석열 대통령은 공정과 상식, 법과 원칙을 금과옥조로 여기는 분이다. 그런데 문제가 되는 것은 그것이 윤석열 표라는 사실이다. 나는 다 옳고 너는 다 그르다고 한다. 현 정권의 우수성을 이야기할 때면 전 정권부터 비난한다. 인사도 고분고분 말 잘 듣는 사람을 골라 쓴다. 여당 운영에도 같은 맥락에서의 영향력을 행사한다.
우스갯소리와 실제로 있었던 일
그런데 희한한 것은 윤석열 대통령이 국내에서보다 일본이나 미국 같은 외국에서 더 긍정적인 평가를 받고 있다는 사실이다. 국내에서의 지지율을 보면 30%대 박스에에 갇혀 꼼짝도 못하고 있는데, 일본과 미국에서는 칭찬이 자자하다. 왜일까. 그들은 우리보다 먼저 선진국이 돼서 그릇이 더 크기에 자기네들 이익을 가져다가 한국의 배를 불리는데도 아량을 베풀어서일까.
우선 일본을 놓고 보자. 그들이 정말 그릇이 큰 나라인가. 그들도 자기네 성질의 뿌리를 섬나라 근성(시마구니곤조; 島國根性)이라고 한다. 자기네는 섬나라 사람이어서 배타적이고 옹졸한 성질을 가졌다는 말이다.
이런 우스갯소리가 있다.
한 어린아이가 네모난 흰떡(절편)을 들고 있는 걸 옆에서 본 어른이 군침을 삼키며 ‘얘, 내가 그 떡 달떡으로 만들어 줄까?’ 했다. 아이는 호기심에 떡을 내밀었다. 떡을 받아 든 어른은 네 개의 모서리를 이빨로 조금씩 베어 먹으며 둥글게 만들었다. ‘어때, 달떡이 됐지?’ 아이는 어른이 먹어버린 떡이 아까웠지만, 조금일지라도 재미는 있었다. ‘이제 반달떡을 만들어 볼까?’ 아이는 고개를 끄덕였다.
어른은 떡을 한입 크게 베어 먹었다. ‘이제 반달이 되었지?’ 먹힌 떡이 정말 아까웠지만 아니랄 수가 없었다. ‘이번엔 꿀떡을 만들어 줄가?’ 아이는 그 달콤한 꿀떡이라면 어른이 먹어 버린 떡보다 더 나은 거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그러라 했다. 어른은 얼른 남은 떡을 입에 넣고 씹는 둥 마는 둥하고는 꿀꺽하고 삼키고 말았다. 아이는 그제야 속은 줄 알고 앙- 하고 울음을 터트렸다.
일본은 그런 나라다. 하나 달라 해서 주면 둘을 달라하고 둘을 주면 셋을 달라한다. 그래서 주면 모두 달라 한다. 물론 일본 사람 전체가 그렇다는 것은 아니다. 좋은 사람도 얼마든지 있다. 지금까지의 그들 정권이 그렇다는 것일 뿐이다.
상부상조, 윈-윈 얼마나 훈훈하고 살맛나는 일인가. 그러나 그건 기대해도 좋은 사람, 나라가 있고 그렇지 못한 경우도 허다하다. 윤석열 대통령이 그렇게도 큰 선물보따리를 안겨 줬는데도, 그들에게서 돌아온 건 무엇인가. 말의 성찬뿐이지 않은가. 아니 물에 빠진 사람 건져 주었더니 내 보따리 내놓으라는 격 아닌가. 앞으로 좋아질 것이라고? 그들을 이제껏 그렇게 지켜보고도 그런 말이 어떻게 나온다는 말인가. 지피지기면 백전백패(知彼知己百戰百勝) 아닌가. 반대로 상대도 나도 알지 못하면 백전백패하는 법이다.
우리도 이제 어제의 대한민국이 아니다. 일본이 우리를 골탕 먹이려 한국 수출 규제를 했으나 더 큰 손해를 본 것은 어느 쪽인가. 우리는 잠재능력을 재확인함과 동시에 국가적, 민족적 긍지까지 갖게 되었다.
이제 우스갯소리 아닌 실제로 있었던 이야기를 하나 해 보려 한다.
내가 늦깎이로 교수가 되고 얼마 안 되어서의 일이다. 교수 한 분이 나를 몹시도 괴롭혔다. 말도 안 되는 일을 들어 그런 것이다. 내가 크리스천이라는 것도 하나의 이유였다. ‘밤에 높은 곳에 올라가 봐라. 붉은 빛 십자가 바다다. 그런 교인들의 인격이 개차반 같으니 나라가 망한 것이다.’ 시중의 건달들이나 쓸법한 어투로 너도 예수쟁이니 마찬가지라는 식으로 나를 비난하기 일쑤였다. 진짜 개차반 같은 인격의 소유자였다.
나는 그런 그가 일본규슈대학에 가서 발표한 나의 논문을 대만에 가서 자기 이름으로 발표했다는 것을 그 무렵에 알았다. 나는 이참에 혼을 좀 내주어야겠다고 생각했다. 김건희의 박사 논문이 표절 논란을 일으켰을 때 매스컴에서 본 것처럼 스케치북에 그가 발표한 논문을 왼쪽에 나의 논문을 오른쪽에 오려 붙이고 서로 같은 부분을 빨간색 사각형 선으로 묶어 표시하였다. 소논문이지만 두 편을 그리하다 보니 쪽 수도 꽤 많았다.
그것을 학과사무실 그의 선반에 내일이라도 당장 주요 지상파 방송국과 중앙 주요 일간지에 우송하겠다는 편지와 함께 올려놓았다. 그리고 나서 시간이 그리 많이 지나지 않아 그가 나의 연구실 문을 열고 들어왔다. ‘임 교수님, 제가 잘못했습니다. 임 교수님이 하라는 대로 하겠습니다. (교수직을) 그만두라면 그만두겠습니다. 그저 명예롭게 물러날 수만 있게 해 주세요.’ 뭐 대충 이런 말을 하고는 맨바닥에 무릎을 굻었습니다. 나는 그의 무릎이 바닥에 닿기 전에 그를 붙잡아 세웠습니다. 사람이 사람을 무릎 꿇게 하는 건 안 된다는 생각에서이지요.
내 연구실 맞은편 연구실 교수가 보니 그가 마치 똥 마려운 강아지처럼 내 연구실 문 앞을 안절부절 못하고 한참동안이나 서성이다가 문을 열고 들어가더라 했다. 그 다음날인가에 였다.
학문하는 사람들에게 있어 논문표절은 그처럼 무서운 범죄이다. 범죄 중에서도 수치스럽기 그지없는, 낯부끄러워 얼굴을 들 수 없는 그런 범죄이다. 그런데도 세월의 탓인지 이제 창피한 줄도 모르고 자기가 무슨 개선장군이라도 된 양 의기양양하게 처든 얼굴에 미소를 띠며 돌아다니기도 한다. 이제 논문표절도 학력위조도 권고되어야 할 세상이 된 것 같다. 요지경이 된 것이다.
결어를 대신하여 - 까마귀와 배, 배는 왜 떨어졌나
대통령 집무실 용산 이전과 천공의 용산 예찬은 공교롭게도 일맥상통한 데가 있다. 까마귀 날자 배가 떨러진 것인지, 아니면 까마귀가 날면서 배를 떨어뜨린 것인지 모르지만 어떻든 사실은 사실이다. 윤석열 대통령의 일본 사랑과 천공의 일본관도 한 뱃속에서 나온 쌍생아 같다.
지난 이야기이지만, 기시다 일본총리의 지지율은 상승에 상승을 거듭하여 2,30%대에 지나지 않던 것이 최근 50%대까지 치솟았다 한다. 가장 큰 원인이 우리 대한민국의 윤석열 대통령 덕분이라 한다. 대일본 외교를 잘해서라는 것이다. 그런데 정작 윤석열 대통령의 지지율은… 모를 일이다. 대한민국 대통령보다 일본총리가 더 어울린다는 말이 나온 이유이다.
긁어 부스럼 만든다는 말이 있다. 왜 안 해도 좋은 말들을 해서 그리도 많은 문제를 만드는지 모르겠다. 국민들은 물가의 아이를 보는 것처럼 불안하기만 하다. 결국은 계엄 선포를 하는 이런한 일이 벌어지지 않았는가?
성도님들, 기도합시다! 기도합시다! 내가 살고 있고, 나의 자손들 대대로 살아가야 할 나의 조국 대한민국을 위하여 기도합시다. 그리고 하나님만을 섬기는 영도자가 나오도록 기도합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