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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itle>▒ Only JESUS - 예수사랑 ▒ &amp;gt; 커뮤니티 &amp;gt; 열린게시판</title>
<link>http://www.aion21.kr/bbs/board.php?bo_table=free</link>
<description>▒ Only JESUS - 예수사랑 ▒ &amp;gt; 커뮤니티 &amp;gt; 열린게시판</description>
<language>ko</language>
	<item>
	<title>맥체인 성경 읽기표</title>
	<link>http://www.aion21.kr/bbs/board.php?bo_table=free&amp;wr_id=282</link>
	<description><![CDATA[<p><span style="font-size:18px;"><span style="font-family:tahoma, geneva, sans-serif;"><span style="color:#FF0000;"><strong>[성경 읽기의 중요성]</strong></span></span></span></p>

<p><br />
<span style="font-size:18px;"><span style="font-family:tahoma, geneva, sans-serif;">성경은 하나님의 말씀이므로 매일 읽고 묵상해야 합니다.<br />
성경은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사랑의 표현이기 때문에 매일 읽고 묵상해야 합니다.<br />
성경은 우리를 위한 하나님의 계획을 담고 있기 때문에 매일 읽고 묵상해야 합니다.<br />
성경은 우리를 구속하기 위한 하나님의 은혜이기 때문에 매일 읽고 묵상해야 합니다.<br />
성경은 우리를 진리로 인도하기 때문에 매일 읽고 묵상해야 합니다.<br />
성경은 우리에게 하나님을 계시하기 때문에 매일 읽고 묵상해야 합니다.<br />
성경 읽기는 모든 그리스도인들에게 선택이 아닌 필수 요소입니다.</span></span></p>

<p> </p>

<p> </p>

<p><span style="font-size:18px;"><span style="font-family:tahoma, geneva, sans-serif;"><span style="color:#008000;"><strong>[맥체인 성경 읽기 특징과 장점]</strong></span></span></span></p>

<p><br />
<span style="font-size:18px;"><span style="font-family:tahoma, geneva, sans-serif;">맥체인 성경은 구약과 신약(또는 시편)에서 4권씩 짝을 이루고 있어서 흥미롭고 읽는 재미를 더합니다.<br />
맥체인 성경은 구약과 신약의 대조를 통해 말씀 간 연관성 및 의미의 다채로움을 만끽하게 합니다.<br />
맥체인 성경은 매일 신구약의 4장씩 일정량을 읽도록 구성되어 끝까지 효과적으로 읽을 수 있습니다.<br />
맥체인 성경은 하나님의 구속사를 한눈에 볼 수 있도록 구성되어 있으며 지속적으로 읽도록 도움을 드립니다.<br />
맥체인 성경은 성경전체를 관통하는 하나님의 생각을 연상하게 훈련시킵니다.<br />
맥체인 성경은 &lt;읽기 표&gt;를 통해 규칙적이고 체계적인 성경 읽기를 가능하게 합니다.<br />
맥체인 성경의 &lt;읽기 표&gt;를 활용하면 1년에 구약은 1독 신약과 시편은 2독 할 수 있습니다.<br />
맥체인 성경은 말씀의 연관성을 찾아 말씀의 참의미를 깨닫게 도와줍니다.</span></span></p>

<p> </p>

<p><br />
<span style="font-size:18px;"><span style="font-family:tahoma, geneva, sans-serif;"><span style="color:#0000FF;"><strong>[맥체인 성경 읽기 방법]</strong></span></span></span></p>

<p><br />
<span style="font-size:18px;"><span style="font-family:tahoma, geneva, sans-serif;">네 성경 본문의 소주제를 통해 중심 단어나 문장을 말씀으로 묵상한다.<br />
네 본문의 말씀을 순서대로, 천천히 읽는다.<br />
두 본문에서 반복되는 단어나 유사한 문맥을 찾아 서로 연결한다.<br />
본문에서 반대의 뜻을 가진 단어나 문장을 찾는다<br />
두 권의 책에서 공통되는 하나님의 말씀을 연결하여 기록한다.<br />
연결되는 말씀을 다른 두 권으로 확대하여 네 권 전체에 흐르는 하나님의 생각과 베푸신 은혜를 누리고, 그 내용을 적어본다.<br />
본문에서 지도자나 인도자로부터 배운 신학 주제나 교리들이 함축하고 있는 문맥의 짝을 찾아본다.<br />
중심 주제를 필두로 삶에 적용할 일들을 적어보고 생활 중에 실천함으로써 변화를 경험해 본다.<br />
하나님이 오늘 나에게 주신 말씀들을 통하여 가르침 명령과 약속 권면, 경고 및 행해야 할 일들을 하나님과 대화하는 마음으로(기도)<br />
성경 읽기를 마무리한다.</span></span></p>

<p> </p>

<p><strong><span style="font-size:18px;"><span style="font-family:tahoma, geneva, sans-serif;">&lt;맥체인 성경읽기표〉를 따라 성경을 읽으면 1년에 신약과 시편은 두 번, 시편을 제외한 구약은 한 번 읽게 됩니다.</span></span></strong></p>

<p> </p>

<p> </p>

<p><strong><span style="font-size:18px;"><span style="font-family:tahoma, geneva, sans-serif;"><a href="http://www.aion21.kr/bbs/view_image.php?fn=%2Fdata%2Feditor%2F2603%2F3232235521_1774964301.1202.jpg" target="_blank" class="view_image"><img itemprop="image" content="http://www.aion21.kr/data/editor/2603/3232235521_1774964301.1202.jpg" src="http://www.aion21.kr/data/editor/2603/3232235521_1774964301.1202.jpg" alt="" class="img-tag "/></a></span></span></strong></p>

<p> </p>

<p><strong><span style="font-size:18px;"><span style="font-family:tahoma, geneva, sans-serif;"><a href="http://www.aion21.kr/bbs/view_image.php?fn=%2Fdata%2Feditor%2F2603%2F3232235521_1774964316.436.jpg" target="_blank" class="view_image"><img src="http://www.aion21.kr/data/editor/2603/3232235521_1774964316.436.jpg" alt="" class="img-tag "/></a></span></span></strong></p>]]></description>
	<dc:creator>예수사랑</dc:creator>
		<dc:date>Tue, 31 Mar 2026 22:39:28 +0900</dc:date>
	</item>
	<item>
	<title>오늘날에도 여전히 신앙고백서가 필요한 5가지 이유</title>
	<link>http://www.aion21.kr/bbs/board.php?bo_table=free&amp;wr_id=281</link>
	<description><![CDATA[<p style="text-align:center;"><a href="http://www.aion21.kr/bbs/view_image.php?fn=%2Fdata%2Feditor%2F2601%2F3232235521_1768677726.28.jpg" target="_blank" class="view_image"><img itemprop="image" content="http://www.aion21.kr/data/editor/2601/3232235521_1768677726.28.jpg" src="http://www.aion21.kr/data/editor/2601/3232235521_1768677726.28.jpg" alt="" class="img-tag " style="width:614px;"/></a></p>

<p> </p>

<p> </p>

<p><span style="font-size:18px;"><span style="font-family:tahoma, geneva, sans-serif;">전도자의 고백처럼 해 아래 새것이 없음에도, 타락한 인간의 본성은 늘 새로움을 추구하며 그러한 성향은 신학의 영역에도 영향을 주고 있다.</span></span></p>

<p> </p>

<p> </p>

<p><span style="font-size:18px;"><span style="font-family:tahoma, geneva, sans-serif;">신학에도 새로운 것을 추구하는 사조가 등장한지 오래다. 더 이상 그 고귀한 옛적 길(렘 6:16)은 그에 합당한 대접을 받지 못하고 있다. 단순히 오래된 가르침일 뿐이고 시대에 뒤떨어진 무용지물로 치부되고 있다.</span></span></p>

<p> </p>

<p> </p>

<p><span style="font-size:18px;"><span style="font-family:tahoma, geneva, sans-serif;">사람들은 새로운 가르침에 열광한다. 뭔가 세련되고 시대의 트렌드에 부합하는 가르침, 그리고 실용주의를 앞세워 많은 가치들을 재단하고 있다. 마치 공허함을 달래기 위해 새로운 것들을 열심히 추구했던 아덴의 모습을 보는 듯하다.</span></span></p>

<p> </p>

<p> </p>

<p><span style="font-size:18px;"><span style="font-family:tahoma, geneva, sans-serif;">그들은 성경마저 시대에 뒤떨어지지 않게 각색되어야 하고, 새로운 감각과 가르침이 필요하다고 주장한다. 그러한 가르침의 결과 자유주의, 성경 고등비평, 유신진화론, 새관점 논쟁, WCC, 퀴어신학 등이 나왔다.</span></span></p>

<p><span style="font-size:18px;"><span style="font-family:tahoma, geneva, sans-serif;">이런 가르침들은 성경에서 너무 멀리 떨어져 있다. 그리고 그 결과가 무서운 이유는 구원의 길에서 떨어져 있기 때문이다.</span></span></p>

<p> </p>

<p> </p>

<p><span style="font-size:18px;"><span style="font-family:tahoma, geneva, sans-serif;">구원을 다루는 특별계시인 성경은 이미 이루어진 일들을 다루고 있다. 이루어졌다는 것은 이미 완성되어 변경할 수 없다는 것을 전제한다.</span></span></p>

<p> </p>

<p> </p>

<p><span style="font-size:18px;"><span style="font-family:tahoma, geneva, sans-serif;">그 구원의 길은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유일한 길이며, 시대와 문화 그 어떤 것도 이것을 변개를 시키거나 영향을 줄 수 없는 불변의 진리다.</span></span></p>

<p> </p>

<p> </p>

<p><span style="font-size:18px;"><span style="font-family:tahoma, geneva, sans-serif;">이 진리는 교회사 속에서 끊임없이 도전을 받아왔고, 앞으로도 받을 것이다. 그러나 시간이 아무리 흐르고 문화의 영향이 강력할지라도, 성경 진리는 언제나 ‘옛적 길’을 통해 발견될 것이다.</span></span></p>

<p> </p>

<p> </p>

<p><span style="font-size:18px;"><span style="font-family:tahoma, geneva, sans-serif;">타락의 결과 인간의 전 영역이 죄로 오염되었고, 특히 지성의 영역도 그렇다. 그래서 하나의 성경을 가지고 있음에도 각자 다른 해석(특히 자의적 해석)을 하며, 자신이 성경적이라 주장하는 모습들을 쉽게 볼 수 있다.</span></span></p>

<p> </p>

<p> </p>

<p><span style="font-size:18px;"><span style="font-family:tahoma, geneva, sans-serif;">하나님께서는 교회사 가운데 수많은 성경교사들을 보내셨을 뿐 아니라, 그들을 통해 공교회의 신앙을 고백하는 문서들을 작성케 하셨다.</span></span></p>

<p> </p>

<p> </p>

<p><span style="font-size:18px;"><span style="font-family:tahoma, geneva, sans-serif;">성경을 주셨을 뿐 아니라 바른 성경 해석을 통해 참된 구원의 길을 가도록 보존하시는 은혜를 베푸신 것이다. 하나님의 놀라운 은혜를 찬양한다.</span></span></p>

<p> </p>

<p> </p>

<p><span style="font-size:18px;"><span style="font-family:tahoma, geneva, sans-serif;">여러 신조들과 신앙고백서들이 있지만, 장로교의 표준문서인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서는 그 내용과 가치에 있어 찬란히 빛나고 있다.</span></span></p>

<p> </p>

<p> </p>

<p><span style="font-size:18px;"><span style="font-family:tahoma, geneva, sans-serif;">성경에 온전히 합치하는 내용과 추상적이지 않은 명료성이 그 특징이다. 성경에 합치하기에 모든 성도들에게 유익하고 꼭 필요한 내용들을 담고 있다.</span></span></p>

<p> </p>

<p> </p>

<p><span style="font-size:18px;"><span style="font-family:tahoma, geneva, sans-serif;">필자가 생각하는 신앙고백서의 필요성을 소개해 보겠다.</span></span></p>

<p> </p>

<p> </p>

<p><span style="font-size:18px;"><span style="font-family:tahoma, geneva, sans-serif;">1. 구원의 길을 바르게 정립한다</span></span></p>

<p> </p>

<p><span style="font-size:18px;"><span style="font-family:tahoma, geneva, sans-serif;">구원의 길은 아무리 강조해도 모자랄 만큼 매우 중요하다. 어떤 성경해석을 가지고 있느냐는 구원과 직접적으로 연관이 있기에 당연히 중요하다.</span></span></p>

<p> </p>

<p> </p>

<p><span style="font-size:18px;"><span style="font-family:tahoma, geneva, sans-serif;">2. 신앙의 체계를 잡아준다</span></span></p>

<p> </p>

<p><span style="font-size:18px;"><span style="font-family:tahoma, geneva, sans-serif;">신앙고백서는 신앙과 삶의 유일한 규범으로 주어진 성경을 이해하는데 필수적 요소라고 생각한다. 올바른 이해를 통해 삶을 살게 하는 메뉴얼의 역할을 훌륭히 수행한다. 성도는 계시의존적 신앙을 하는 사람들인데, 바른 교리적 해석을 통해 더 깊은 진리를 맛보게 되고, 더 깊은 신앙의 삶으로 나아 갈 수 있다.</span></span></p>

<p> </p>

<p> </p>

<p><span style="font-size:18px;"><span style="font-family:tahoma, geneva, sans-serif;">3. 신앙에 있어 교리적 혼돈을 막아준다</span></span></p>

<p> </p>

<p><span style="font-size:18px;"><span style="font-family:tahoma, geneva, sans-serif;">신앙고백서를 공부하면 자의적 해석을 멈추게 되고, 신학적으로 교정되어 바른 교리를 따르게 된다. 바른 교리의 시금석은 그 결과가 오직 하나님의 영광을 구하게 하는지 아니면 자신의 영광을 구하게 하는지를 보면 알 수 있다.</span></span></p>

<p> </p>

<p> </p>

<p><span style="font-size:18px;"><span style="font-family:tahoma, geneva, sans-serif;">4. 신앙의 기준을 잡아준다</span></span></p>

<p> </p>

<p><span style="font-size:18px;"><span style="font-family:tahoma, geneva, sans-serif;">기준이 명확하면 흔들리지 않는다. 바르고 참된 교리는 신앙의 모호성을 제거해 주며 배우고 확신하는 일에 거하게 도와준다. 공교회가 함께 고백하는 신앙을 함께 공유하는 일은 복된 일이다. 주님과 사도들로부터 가르쳐진 복음이 지금 내게도 있다는 것. 얼마나 놀랍고 복된 일인가!</span></span></p>

<p> </p>

<p> </p>

<p><span style="font-size:18px;"><span style="font-family:tahoma, geneva, sans-serif;">5. 참된 신앙의 전수를 가능케 한다</span></span></p>

<p> </p>

<p><span style="font-size:18px;"><span style="font-family:tahoma, geneva, sans-serif;">4차 산업혁명 시대에 진입하는 등 문화와 상황이 급변하고, 사람들은 더욱 새로운 것을 추구하고 있다. 과거의 유산들은 더욱 잊혀져 가겠지만, 여전히 옛적 길 한가운데를 지키고 있으며 항구적인 가치가 있는 신앙고백서를 배우고 계속 후대에 가르친다면, 성경이 말하는 참된 신학과 신앙을 가지는 복을 누리게 될 것이라 확신한다.</span></span></p>

<p> </p>

<p> </p>

<p><span style="color:#006699;"><span style="font-size:18px;"><span style="font-family:tahoma, geneva, sans-serif;">출처 : 김성욱 크리스찬북뉴스 명예편집위원, 삼송제일교회 중고등부 부장</span></span></span></p>]]></description>
	<dc:creator>예수사랑</dc:creator>
		<dc:date>Sun, 18 Jan 2026 04:28:47 +0900</dc:date>
	</item>
	<item>
	<title>[빛과 소금] “내 원대로 마시옵고, 아버지의 원대로”</title>
	<link>http://www.aion21.kr/bbs/board.php?bo_table=free&amp;wr_id=280</link>
	<description><![CDATA[<p><img itemprop="image" content="http://www.aion21.kr/data/editor/2601/3232235521_1768602261.03.jpg" src="http://www.aion21.kr/data/editor/2601/3232235521_1768602261.03.jpg" alt="" class="img-tag " style="width:299px;"/></p>

<p> </p>

<p> </p>

<p> </p>

<p><span style="font-size:18px;"><span style="font-family:tahoma, geneva, sans-serif;">어린 시절 성경에서 가장 부러운 기도 장면은 솔로몬 왕의 것이었다. 꿈에서 “내가 너에게 무엇을 주기를 바라느냐”는 주님의 질문에 솔로몬은 “주님의 종에게 지혜로운 마음을 주셔서, 주님의 백성을 재판하고, 선과 악을 분별할 수 있게 해주소서”라고 간구한다. 주님은 솔로몬의 답변이 마음에 들었다. 그래서 이렇게 말씀한다. 성경 개역개정 버전이다.</span></span></p>

<p> </p>

<p> </p>

<p><span style="color:#FF0000;"><span style="font-size:18px;"><span style="font-family:tahoma, geneva, sans-serif;">“네가 이것을 구하도다 자기를 위하여 장수하기를 구하지 아니하며 부도 구하지 아니하며 자기 원수의 생명을 멸하기도 구하지 아니하고 오직 송사를 듣고 분별하는 지혜를 구하였으니 내가 네 말대로 하여 네게 지혜롭고 총명한 마음을 주노니 네 앞에도 너와 같은 자가 없었거니와 네 뒤에도 너와 같은 자가 일어남이 없으리라.” (왕상 3:11~13)</span></span></span></p>

<p> </p>

<p> </p>

<p><span style="font-size:18px;"><span style="font-family:tahoma, geneva, sans-serif;">주님은 지혜에 더해 솔로몬이 달라고 하지 않은 부귀와 영화, 그리고 장수의 축복까지 주셨다. 금도끼 은도끼 이야기의 착한 나무꾼처럼 솔로몬은 오직 백성들을 위해 지혜로운 마음을 구하니 모든 영광이 따라오는 축복의 주인공이 됐다. 말년의 헛됨과는 별도로 말이다.</span></span></p>

<p> </p>

<p><span style="font-size:18px;"><span style="font-family:tahoma, geneva, sans-serif;">다니엘의 기도도 인상적이었다. 총리 다니엘의 능력을 시기한 페르시아 고관들의 음모로 30일 동안 다리우스 왕 말고 다른 신이나 사람에게 간구하는 사람은 누구든지 사자 굴에 집어넣는다는 금령이 발표된다. 그럼에도 다니엘은 기도한다.</span></span></p>

<p> </p>

<p> </p>

<p><span style="color:#FF0000;"><span style="font-size:18px;"><span style="font-family:tahoma, geneva, sans-serif;">“다니엘이 이 조서에 왕의 도장이 찍힌 것을 알고도 자기 집에 돌아가서는 윗방에 올라가 예루살렘으로 향한 창문을 열고 전에 하던 대로 하루 세 번씩 무릎을 꿇고 기도하며 그의 하나님께 감사하였더라.”(단 6:10)</span></span></span></p>

<p> </p>

<p> </p>

<p><span style="font-size:18px;"><span style="font-family:tahoma, geneva, sans-serif;">한적한 다락방에 올라가, 예루살렘 쪽으로 난 창문을 열고, 습관임을 암시하듯 하루 세 번씩, 겸손하게 무릎을 꿇고, 기도하며 감사를 드렸다는 것이다.</span></span></p>

<p> </p>

<p><span style="font-size:18px;"><span style="font-family:tahoma, geneva, sans-serif;">솔로몬과 다니엘을 넘어서는 더 드라마틱한 기도는 신약 성경에 나온다. 예수님이 잡히시기 직전 감람산에서 드린 기도이다. 제자들과 돌을 던져 닿을 만한 거리에 떨어져 무릎을 꿇고 예수님은 땀이 핏방울같이 될 정도로 이렇게 기도한다.</span></span></p>

<p> </p>

<p> </p>

<p><span style="font-size:18px;"><span style="font-family:tahoma, geneva, sans-serif;"><span style="color:#FF0000;">“아버지여 만일 아버지의 뜻이거든 이 잔을 내게서 옮기시옵소서 그러나 내 원대로 마시옵고 아버지의 원대로 되기를 원하나이다.”(눅 22:42)</span></span></span></p>

<p> </p>

<p> </p>

<p><span style="font-size:18px;"><span style="font-family:tahoma, geneva, sans-serif;">내 뜻이 아니고 하나님 아버지의 뜻대로 구하는 것이 기도의 본질이었다. 내 뜻을 중심으로 하나님이 움직여주시기를 구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뜻을 기준 삼아 내 뜻을 조율하는 것이 기도의 핵심이었다. 그래야 솔로몬처럼 구한 것이 주님의 마음에 들었다고 인정받는다. 하나님의 마음에 들게 간구한다는 것, 다니엘의 방법처럼 두려움 없이 하루 세 번 습관에 따라 기도하며 감사를 드리는 것이 축복의 통로임을 거듭 알게 됐다.</span></span></p>

<p> </p>

<p><span style="font-size:18px;"><span style="font-family:tahoma, geneva, sans-serif;">국민일보 종교국은 새해부터 ‘365 기도 ON-한국교회 함께하는 기도 캠페인’을 시작했다. 2026년 모든 성도가 하루도 빠짐없이 같은 제목으로 기도할 수 있도록 한국교회 다양한 목회자들이 기도문을 작성하고 있다. 지난 1일자 첫 기도문의 주인공은 인천 강화교산교회 박기현 목사였다. 132년 역사의 초대교회 신앙을 간직한 강화교산교회는 지난해 말 화재로 예배당이 전소됐지만 곧바로 맞이한 주일에 이웃 건물에 모여 변함없이 예배를 드리며 늘 함께하시는 임마누엘 하나님을 기억했다. 박 목사는 국민일보에 보내온 기도문에서 “세월의 무게에 눌려 굳어진 마음을 깨뜨려주시고 잃어버린 첫 사랑을 회복하게 하옵소서”라고 간구했다.</span></span></p>

<p> </p>

<p><span style="font-size:18px;"><span style="font-family:tahoma, geneva, sans-serif;">이영훈 여의도순복음교회 목사는 복음의 능력과 십자가 사랑으로 회복에 앞장서는 교회를 위해, 장동민 백석대 교수는 새해 벽두부터 전해지는 전쟁의 소식 속에서 평화를 간절히 구했다. 김의신 광주다일교회 목사는 ‘사랑 믿음 소망의 빛 돼 주소서’, 한기채 중앙성결교회 목사는 ‘생명의 성령이 충만케 하소서’라고 기도했다. 내 뜻이 아니라 하나님의 뜻을 구하는 기도가 한국교회 안에 더욱 뜨겁게 확산하길 기도해 본다.</span></span></p>

<p> </p>

<p> </p>

<p><span style="color:#006699;"><span style="font-size:18px;"><span style="font-family:tahoma, geneva, sans-serif;">우성규 종교부장 mainport@kmib.co.kr</span></span></span></p>]]></description>
	<dc:creator>예수사랑</dc:creator>
		<dc:date>Sat, 17 Jan 2026 07:25:46 +0900</dc:date>
	</item>
	<item>
	<title>유튜브에 숨은 이단 찾아내는 11가지 비법은?</title>
	<link>http://www.aion21.kr/bbs/board.php?bo_table=free&amp;wr_id=279</link>
	<description><![CDATA[<p><span style="font-size:18px;"><span style="font-family:tahoma, geneva, sans-serif;"><span style="color:rgb(18,18,18);">유튜브에 숨은 이단 찾아내는 11가지 비법은? </span><span style="color:rgb(18,18,18);">[출처] - 국민일보</span></span></span></p>

<p><br />
<span style="font-size:18px;"><span style="font-family:tahoma, geneva, sans-serif;"><span style="color:rgb(18,18,18);">[원본링크] - https://www.kmib.co.kr/article/view.asp?arcid=0015239184</span></span></span></p>

<p> </p>

<p><span style="color:rgb(18,18,18);font-family:tahoma, geneva, sans-serif;font-size:18px;">유튜브 사용자가 급증하면서 이단들이 제작한 위장 콘텐츠도 범람하고 있다.</span></p>

<p><br />
<span style="font-size:18px;"><span style="font-family:tahoma, geneva, sans-serif;"><span style="color:rgb(18,18,18);">기독교포털뉴스(www.kportalnews.co.kr)는 최근 ‘유튜브에서 이단 분별하는 11가지 지침’이라는 제목의 팸플릿을 제작했다.</span></span></span></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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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pan style="font-size:18px;"><span style="font-family:tahoma, geneva, sans-serif;"><span style="color:rgb(18,18,18);">정윤석 대표는 20일 “11가지 지침 중 1~2가지만 해당해도 예의주시해야 한다”면서 “문항 중 4개 이상 해당하는 동영상 콘텐츠는 이단·사이비로 봐도 무방하다”고 밝혔다. 정 대표는 “유튜브 알고리즘을 통해 우연히 접속한 기독교 동영상 중 11가지 지침에 해당하는 영상이 있다면 시청을 중단한 뒤 목회자와 상담하라”고 조언했다.</span></span></span></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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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pan style="font-size:18px;"><span style="font-family:tahoma, geneva, sans-serif;"><span style="color:rgb(18,18,18);">팸플릿에는 11가지 지침 외에도 한국교회가 이단·사이비로 지정한 단체가 운영하는 유튜브 페이지의 명칭과 엠블럼도 자세히 소개하고 있다.</span></span></span></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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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pan style="font-size:18px;"><span style="font-family:tahoma, geneva, sans-serif;"><span style="color:#FF0000;"><strong>◇ 다음은 ‘유튜브에서 이단 분별하는 11가지 지침’. (기독교포털뉴스 제공)</strong></span></span></span></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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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pan style="font-size:18px;"><span style="font-family:tahoma, geneva, sans-serif;"><span style="color:rgb(18,18,18);">11가지 항목 중 YES에 해당하는 게 1~2개면 예의주시, 3~4개면 문제단체, 4개 이상이면 단연코 이단·사이비입니다. 11가지 항목에 해당하는 내용을 청취하고 계신다면 바로 담임목사님과 상의하시고 해당 영상 채널의 청취·탐독·접속을 절대 금지하셔야 합니다.</span></span></span></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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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pan style="font-size:18px;"><span style="font-family:tahoma, geneva, sans-serif;"><strong>1. 암호식 비유 풀이</strong><br />
<span style="color:rgb(18,18,18);">성경은 문맥과 문장의 흐름을 따라 읽고 해석해야 함에도, 성경을 비유로 풀어야 한다며 신·구약 성경의 특정 구절만 보면서 이 구절 저 구절 짜 맞추기를 한다.</span></span></span></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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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pan style="font-size:18px;"><span style="font-family:tahoma, geneva, sans-serif;"><strong>2. 비밀 교육</strong><br />
<span style="color:rgb(18,18,18);">복음은 부끄럽거나 감추는 것이 아닌데도, 인터넷이나 유튜브를 통해 청취·접속하는 것을 목사님과 부모님께 비밀로 하라고 한다. 입막음을 시켜 성경공부 하는 것이 탄로나지 않도록 비밀교육을 시킨다.</span></span></span></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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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pan style="font-size:18px;"><span style="font-family:tahoma, geneva, sans-serif;"><strong>3. 시대별 구원자</strong><br />
<span style="color:rgb(18,18,18);">예수님은 어제나 오늘이나 영원토록 모든 사람의 구원자(히13:8)이신데도 그렇게 가르치지 않고 시대별로 구원자가 각자 다르게 존재해 왔다며 노아·모세·아브라함도 구원자고 신약 때는 예수님이 구원자였지만, 말세에는 새 시대의 구원자를 믿어야 한다고 주장한다.</span></span></span></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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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pan style="font-size:18px;"><span style="font-family:tahoma, geneva, sans-serif;"><strong>4. 동방한국</strong><br />
<span style="color:rgb(18,18,18);">성경에서 말씀하는 동방(사41:2, 46:11 등)은 이스라엘의 동쪽인 팔레스타인 지역을 뜻하는데도 성경의 동방이 한국이라며 ‘의인’, ‘구원자’가 대한민국에서 태어난다고 주장한다. 성경 말씀을 한국 특정 지역이나 특정 단체의 사건에 꿰어맞춘다.</span></span></span></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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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pan style="font-size:18px;"><span style="font-family:tahoma, geneva, sans-serif;"><strong>5. 직통계시</strong><br />
<span style="color:rgb(18,18,18);">교주에게 하나님이 계시를 내려주셨다며 예수님 이후 2000년 동안 봉인됐던 진리를 풀고 새롭게 내려진 것이라고 과장한다. 또한, 교주가 하나님 음성을 들었다며 자신의 말을 듣지 않을 때 저주받는다고 공포감을 조장한다. 자신이 천국·지옥을 수백 차례 갔다 왔다며 주님이 음성을 들려주셨다고 허황한 이야기를 진실인 것처럼 넘치는 확신을 하고 말한다.</span></span></span></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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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pan style="font-size:18px;"><span style="font-family:tahoma, geneva, sans-serif;"><strong>6. 종말 예언</strong><br />
<span style="color:rgb(18,18,18);">예수님이 오시는 날과 때는 아무도 모른다고 성경이 말씀했음에도 불구하고 조건부 종말, 예를 들어 2~3년 이내에 14만4000명이 찬다면 종말이 올 것이라고 거짓말한다. 혹은 역병·재난·전쟁·테러 등으로 두려움을 주고 재림의 날짜를 강조하면서 날짜를 못 박아 말하며 맹종을 강요하고 공포감을 조장하며 일상생활에 지장을 받게 한다.</span></span></span></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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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pan style="font-size:18px;"><span style="font-family:tahoma, geneva, sans-serif;"><strong>7. 율법주의</strong><br />
<span style="color:rgb(18,18,18);">날짜·절기로서의 안식일은 현재 그리스도인들의 의무사항이 아닌데도(골2:16, 호2:11) 안식일은 오늘날 일요일이 아닌 토요일이라며 토요일로 바꿔서 예배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일요일은 태양신을 숭배하는 날이니 안식일과 더불어 유월절 등 구약의 절기를 지금도 지켜야 구원받는다는 율법주의적 주장을 한다.</span></span></span></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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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pan style="font-size:18px;"><span style="font-family:tahoma, geneva, sans-serif;"><strong>8. 극도의 교회 비난</strong><br />
<span style="color:rgb(18,18,18);">교회의 아픔과 상처가 있을 때 그것을 싸매며 기도하고 함께 아파하기보다 교회의 타락한 모습만 부각하고 비판하면서 위선적인 종교집단으로 매도한다. 정통교회는 구원이 없는 바빌론이고 진리가 없이 타락한 집단이라며 악마시하고 교회를 떠나 자신들의 단체로 옮겨야만 구원받는다며 정통교회의 문제점만 부각하고 교회의 구원이나 진리를 부정한다.</span></span></span></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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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pan style="font-size:18px;"><span style="font-family:tahoma, geneva, sans-serif;"><strong>9. 프리메이슨 음모론 등 과도한 호기심 자극</strong><br />
<span style="color:rgb(18,18,18);">영적인 하나님 나라는 물론 이 세상 나라 또한 통치하고 섭리하시는 분은 하나님인데도 마치 이 세상 나라의 배후에는 프리메이슨·일루미나티 등 특정 세력이 좌우하는 것처럼 강조하며 심각하게는 악마적 조직에 의해 세상이 움직이는 것처럼 과장한다. 이외에 성경에 없는 UFO, 피라미드, 케네디가의 저주론 등으로 공포감을 조장해 현실 인식을 어렵게 만든다.</span></span></span></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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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pan style="font-size:18px;"><span style="font-family:tahoma, geneva, sans-serif;"><strong>10. 유튜브 채널 투명성</strong><br />
<span style="color:rgb(18,18,18);">유튜브 채널 운영자가 신학 채널이나 기독교 관련 채널을 운영하는데 신학을 어디서 했는지, 교단 소속은 어디인지, 교회는 다니는지 아닌지가 전혀 확인되지 않았다.</span></span></span></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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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pan style="font-size:18px;"><span style="font-family:tahoma, geneva, sans-serif;"><strong>11. 일상생활 불가</strong><br />
<span style="color:rgb(18,18,18);">유튜브 채널을 시청하면 할수록 삶의 용기와 가족에 대한 사랑이 커지는 게 아니라 가족의 뒤에 원수 사탄이 들어가 있는 것 같고, 곧 세상 마지막이 올 것 같아 일상생활은 아무 의미 없게 느껴진다.</span></span></span></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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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 style="text-align:center;"><span style="font-size:18px;"><span style="font-family:tahoma, geneva, sans-serif;"><span style="color:rgb(18,18,18);"><img itemprop="image" content="http://www.aion21.kr/data/editor/2601/3232235521_1768135601.03.jpg" src="http://www.aion21.kr/data/editor/2601/3232235521_1768135601.03.jpg" alt="" class="img-tag " style="width:483px;"/><img src="http://www.aion21.kr/data/editor/2601/3232235521_1768135622.4.jpg" alt="" class="img-tag " style="width:504px;"/></span></span></span></p>]]></description>
	<dc:creator>예수사랑</dc:creator>
		<dc:date>Sun, 11 Jan 2026 21:47:15 +0900</dc:date>
	</item>
	<item>
	<title>정통교단 로고</title>
	<link>http://www.aion21.kr/bbs/board.php?bo_table=free&amp;wr_id=278</link>
	<description><![CDATA[<p><span style="font-size:18px;"><span style="font-family:tahoma, geneva, sans-serif;"><strong>정통교단 로고</strong></span></span></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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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 style="text-align:center;"><span style="font-size:18px;"><span style="font-family:tahoma, geneva, sans-serif;"><strong><img itemprop="image" content="http://www.aion21.kr/data/editor/2601/3232235521_1767247536.59.jpg" src="http://www.aion21.kr/data/editor/2601/3232235521_1767247536.59.jpg" alt="" class="img-tag " style="width:565px;"/></strong></span></span></p>]]></description>
	<dc:creator>예수사랑</dc:creator>
		<dc:date>Thu, 01 Jan 2026 15:05:47 +0900</dc:date>
	</item>
	<item>
	<title>[PD수첩] 다락방의 타락한 목회자들 - 2024년 10월 22일 밤 10시 20분</title>
	<link>http://www.aion21.kr/bbs/board.php?bo_table=free&amp;wr_id=277</link>
	<description><![CDATA[<p><span style="color:#006699;"><span style="font-size:18px;"><span style="font-family:tahoma, geneva, sans-serif;"><strong>[PD수첩] 다락방의 타락한 목회자들 - 2024년 10월 22일 밤 10시 20분</strong></span></span></span></p>

<p> </p>

<p><span style="font-size:18px;"><span style="font-family:tahoma, geneva, sans-serif;"><strong><a href="https://www.youtube.com/live/iMrqwGquj80?si=nPsc7GPX7412khdE" target="_blank" rel="nofollow noreferrer noopener">https://www.youtube.com/live/iMrqwGquj80?si=nPsc7GPX7412khdE</a></strong></span></span></p>

<p> </p>

<p> </p>

<p><span style="font-size:18px;"><span style="font-family:tahoma, geneva, sans-serif;"><strong><a href="http://www.aion21.kr/bbs/view_image.php?fn=%2Fdata%2Feditor%2F2510%2F3232235521_1760441774.88.jpg" target="_blank" class="view_image"><img itemprop="image" content="http://www.aion21.kr/data/editor/2510/3232235521_1760441774.88.jpg" src="http://www.aion21.kr/data/editor/2510/3232235521_1760441774.88.jpg" alt="" class="img-tag " style="width:1058px;"/></a></strong></span></span></p>]]></description>
	<dc:creator>예수사랑</dc:creator>
		<dc:date>Tue, 14 Oct 2025 20:30:25 +0900</dc:date>
	</item>
	<item>
	<title>“교회의 열정 회복하려면 목회자부터 기도의 불 붙어야”</title>
	<link>http://www.aion21.kr/bbs/board.php?bo_table=free&amp;wr_id=276</link>
	<description><![CDATA[<p style="text-align:center;"><a href="http://www.aion21.kr/bbs/view_image.php?fn=%2Fdata%2Feditor%2F2509%2F3232235521_1757882379.59.jpg" target="_blank" class="view_image"><img itemprop="image" content="http://www.aion21.kr/data/editor/2509/3232235521_1757882379.59.jpg" src="http://www.aion21.kr/data/editor/2509/3232235521_1757882379.59.jpg" alt="" class="img-tag " style="width:640px;"/></a></p>

<p><strong><span style="font-size:14px;"><span style="color:#006699;"><span style="background-color:rgb(247,247,247);font-family:'segoe ui', 'segoe ui midlevel', sans-serif;">예수교대한성결교회 소속 목회자들이 지난 9일 부산 수영로교회에서 진행된 ‘2026 목회계획 워크숍’의 목회 비전 강의를 마친 뒤 강사인 김형근(앞줄 왼쪽 네 번째) 순복음금정교회 목사와 함께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이들은 지난 8일부터 3박 4일간 부산 주요 교회를 탐방했다.</span></span></span></strong></p>

<p> </p>

<p> </p>

<p> </p>

<p><span style="color:#000000;"><span style="font-size:18px;"><span style="font-family:tahoma, geneva, sans-serif;">예수교대한성결교회(예성·총회장 홍사진 목사)가 지난 8일부터 11일까지 부산 수영로교회(이규현 목사)와 순복음금정교회(김형근 목사), 포도원교회(김문훈 목사), 호산나교회(유진소 목사) 등지에서 ‘2026 목회 계획 워크숍’을 개최하고 내년 목회를 준비하는 목회자들에게 실질적 도움을 제시했다. 워크숍은 예성 국내선교위원회와 국민일보목회자포럼 부산지회가 주최하고 목회사역 분과가 주관했다. 목회 비전을 주제로 김형근, 이규현 목사가 강의했다.</span></span></span></p>

<p> </p>

<p><span style="color:#000000;"><span style="font-size:18px;"><span style="font-family:tahoma, geneva, sans-serif;">김형근 순복음금정교회 목사는 목회자들이 직면한 다양한 문제와 해결책을 제시했다. 김 목사는 목회자의 인격과 품격 부족, 재정 불투명성, 신앙과 삶의 이원화, 사회 소통 부재 등 내부적 문제들을 지적했다. 그는 “목회자들은 돈, 여자, 명예를 조심하고 어디를 가든지 교회에 있는 것처럼 생활해야 한다”며 “특히 여 교역자와 밥 먹는 것조차 조심해야 한다”고 강조했다.</span></span></span></p>

<p> </p>

<p> </p>

<p><span style="color:#000000;"><span style="font-size:18px;"><span style="font-family:tahoma, geneva, sans-serif;">그는 교회 성장의 핵심으로 영적 부흥, 내적 부흥, 외적 부흥이 있음을 역설하면서 내적 부흥은 성도 간 유무 상통을 통해 사랑을 나누고 외부 사람들을 전도하는 것으로 이루어진다고 설명했다. 김 목사는 2026년의 교회 모습은 “주께서 구원받는 사람을 날마다 더하게 하시는 것”이라며 비전을 제시했다. 김 목사는 이를 위해 “목회자는 열정(Passion), 순수(Purity), 기도(Prayer), 능력(Power), 사람 세움(People)의 자세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이어 “목회자는 (목회에) 미쳐야 하며 삶이 투명하게 드러나야 하고 기도 시간을 늘려야 한다”고 덧붙였다.</span></span></span></p>

<p> </p>

<p><span style="color:#000000;"><span style="font-size:18px;"><span style="font-family:tahoma, geneva, sans-serif;">이규현 수영로교회 목사는 오늘의 한국교회 현실을 진단하고 회복 방안을 제시했다. 그는 한국교회가 1990년대부터 쇠퇴기에 접어들며 침체 정도가 심각해지는 상황에, 외적 성장에 치중해 교회 규모를 키우고 신자 수를 늘리는 데 집중했음을 지적했다. 이 같은 성장주의는 결국 본질을 놓치고 방법론과 프로그램에 치우치게 했음도 꼬집었다. 그는 “이로 인해 한국교회가 저체온증을 앓고 있으며 이는 예배의 냉랭함과 활력 저하로 이어졌다”고 진단했다.</span></span></span></p>

<p> </p>

<p><span style="color:#000000;"><span style="font-size:18px;"><span style="font-family:tahoma, geneva, sans-serif;">이 목사는 그 타개 방안에 대해 “교회가 뜨거워져야 하는데 여기에 기도는 필수적이며 기도의 불은 목회자 스스로 기도 불이 붙어야 한다”고 했다. 또 “교회는 사도행전의 교회처럼 성령의 역동적인 힘을 회복해야 하며 사람의 힘이 아닌 하늘의 권능으로 목회해야 지치지 않고, 하나님이 하시는 것을 지켜볼 수 있다”고 전했다.</span></span></span></p>

<p> </p>

<p><span style="color:#000000;"><span style="font-size:18px;"><span style="font-family:tahoma, geneva, sans-serif;">고신원(54) 신월동교회 목사는 “실제 목회 경험을 바탕으로 한 강의와 컨설팅이 큰 힘이 됐다. 이웃사랑과 돌봄, 설교 외에도 영적인 체험을 제공하는 데 소홀했음을 깨닫게 됐다”며 “앞으로 금요철야와 오후예배, 주일 오전 기도시간을 확대해 영적 체험을 강화하고 목회 질을 향상하기로 결심했다”고 말했다.</span></span></span></p>

<p> </p>

<p><span style="color:#000000;"><span style="font-size:18px;"><span style="font-family:tahoma, geneva, sans-serif;">목회자들은 부산의 주요 교회들도 탐방했다. 포도원교회와 호산나교회를 방문해 목회 철학과 성장 비결 등을 청취했다. 임시영(53) 신수동교회 목사는 “각 교회를 방문해 목사님들의 리더십 스타일과 현실화 방식을 관찰할 수 있었다”며 “각 목회자들의 개성이 드러나는 리더십을 보며 교육자 및 성도와의 관계 설정에 대해 깊이 고민했다. 내년 목양을 준비하면서 양육과 영적 능력 강화의 중요성을 다시 한번 확인했다”고 말했다.</span></span></span></p>

<p> </p>

<p><span style="color:#000000;"><span style="font-size:18px;"><span style="font-family:tahoma, geneva, sans-serif;">출처 : 국민일보 </span></span></span></p>]]></description>
	<dc:creator>예수사랑</dc:creator>
		<dc:date>Mon, 15 Sep 2025 05:43:06 +0900</dc:date>
	</item>
	<item>
	<title>인간이 타락할 줄 알면서도 왜 선악과를 두셨는가?</title>
	<link>http://www.aion21.kr/bbs/board.php?bo_table=free&amp;wr_id=275</link>
	<description><![CDATA[<p><a href="http://www.aion21.kr/bbs/view_image.php?fn=%2Fdata%2Feditor%2F2508%2F3232235521_1755196918.28.jpg" target="_blank" class="view_image"><img itemprop="image" content="http://www.aion21.kr/data/editor/2508/3232235521_1755196918.28.jpg" src="http://www.aion21.kr/data/editor/2508/3232235521_1755196918.28.jpg" alt="" class="img-tag " style="width:606px;"/></a></p>

<p> </p>

<p> </p>

<p><span style="color:#800000;"><span style="font-size:18px;"><span style="font-family:tahoma, geneva, sans-serif;">하나님께서는 천지만물을 창조하셨고 세상만사를 주관하시는 전지전능하신 분입니다. 그런데 왜 하와의 범죄를 방조해서 원죄라는 것을 만드셨는지요, 어쩌면 선악과라는 것을 만들어서 인간의 범죄를 조장하신 것은 아닌지요?</span></span></span></p>

<p> </p>

<p><span style="color:#800000;"><span style="font-size:18px;"><span style="font-family:tahoma, geneva, sans-serif;">설교시간에 인간은 모두 하나님이 이미 정하신대로 살아가는 존재이므로 우리의 자유의지로는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존재라고 들었습니다. 그게 사실이라면 인간은 로보트이고 모든 프로그램은 하나님께서 작성하셨다는 것인데, 그렇다면 인간이 죄를 짓는 것은 로보트인 인간의 책임이 아니라 프로그램을 작성하신 하나님의 책임이 아닐런지요?  </span></span></span></p>

<p> </p>

<p><span style="color:#800000;"><span style="font-size:18px;"><span style="font-family:tahoma, geneva, sans-serif;">하와의 범죄나 가롯 유다의 범죄도 다 하나님의 뜻대로 이루어진 것이므로 그들의 잘못은 없는 것이 아닌지요? 비약해서 생각해 보면 인간이 죄를 짓지 않으려고 노력하는 것 자체가 하나님의 계획에 반하는 행위가 되는 것이 아닌지요?</span></span></span></p>

<p> </p>

<p><span style="color:#800000;"><span style="font-size:18px;"><span style="font-family:tahoma, geneva, sans-serif;">이런 식으로 생각하다 보니 하나님께서 의미 없이 인간을 시험하고 계시거나 아니면 하나님 영역 밖의 어떤 존재가 있는 것은 아닌지 하는 이상한 쪽으로 흘러가게 됩니다. 이 부분에 대해 성경에서 무어라고 말씀하고 계신지 목사님께 여쭤보고 싶습니다.</span></span></span></p>

<p> </p>

<p> </p>

<p><span style="color:#008080;"><span style="font-size:18px;"><span style="font-family:tahoma, geneva, sans-serif;">[답변]</span></span></span></p>

<p> </p>

<p><span style="color:#008080;"><span style="font-size:18px;"><span style="font-family:tahoma, geneva, sans-serif;">바보 같은 질문이 아니라 모든 신자가 항상 궁금해 하지만 그 해답을 정확하게 정리해 놓고 있지 않는 기독교 신앙의 가장 핵심적인 질문입니다. 신학적으로도 죄의 기원과 인간의 자유의지의 상관관계 나아가 하나님의 예정에까지 이어지는 굉장히 심오한 질문입니다. </span></span></span></p>

<p><span style="color:#008080;"><span style="font-size:18px;"><span style="font-family:tahoma, geneva, sans-serif;">그런데 질문하신 가운데 조금 모순되어 보이는 내용이 있어 답변을 드리기 전에 먼저 지적하고 넘어가고자 합니다. "설교 시간에 인간은 모두 하나님이 이미 정하신대로 살아가는 존재이므로 우리의 자유의지로는 아무 것도 할 수 없는 존재라고 들었습니다"라고 말했습니다. 그러나 이는 자칫 인간은 자신의 자유의지로는 아무 것도 할 수 없고 사전에 정해진 절대적인 운명에 무조건 묶여 있다는 뜻으로 들립니다. </span></span></span></p>

<p><span style="color:#008080;"><span style="font-size:18px;"><span style="font-family:tahoma, geneva, sans-serif;">아마도 목사님이 그런 뜻으로는 결코 설교하지 않았을 것입니다. 대신에 틀림없이 다음 두 가지 중의 하나의 의미였을 것입니다. </span></span></span></p>

<p> </p>

<p><span style="color:#008080;"><span style="font-size:18px;"><span style="font-family:tahoma, geneva, sans-serif;">1)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로 구원 받지 못해 원죄 하에 있는 인간은 스스로는 하나님을 찾을 수 없을 뿐 아니라 설령 불신자가 자신의 자유 의지를 동원하여 어떤 선한 행위를 해도 궁극적으로 선하지 못하다. 2) 하나님의 은혜로 구원 받은 신자도 예수 그리스도 안에 붙어 있지 않으면 하나님을 위한 어떤 선한 열매도 맺을 수 없다. </span></span></span></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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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span style="color:#008080;"><span style="font-size:18px;"><span style="font-family:tahoma, geneva, sans-serif;">요컨대 인간은 신자 불신자를 막론하고 하나님의 은혜와 간섭이 없이는 하나님의 영광이 드러나는 일을 스스로 할 수 없다는 뜻입니다. </span></span></span></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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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span style="color:#008080;"><span style="font-size:18px;"><span style="font-family:tahoma, geneva, sans-serif;">그러나 사주팔자처럼 인간이 아무리 스스로 노력해도 어떤 정해진 방향으로 반드시 흘러가게 되어 있다는 의미는 성경 어디에도 없습니다. 만약 그런 식의 숙명론을 인정하면 죄를 짓는 것도 숙명이기에 인간에게 귀책사유가 전혀 적용되지 않을 뿐 아니라 오히려 인간을 죄인이라고 탓하는 것이 잘못이 됩니다. 아래 답변에서 따져볼 죄의 기원과 인간의 자유의지의 상관관계를 이해할 수 있다면 인간이 결코 숙명론으로 묶여 있을 존재가 아님도 확신할 수 있을 것입니다.   </span></span></span></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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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span style="color:#008080;"><span style="font-size:18px;"><span style="font-family:tahoma, geneva, sans-serif;">선악과와 자유의지에 관해 대부분의 신자들이 신앙 상의 오해 내지 이해 부족을 한두 가지 갖고 있습니다. 그 하나는 "하나님이 인간을 어떤 존재를 만들었는가? 그래서 그런 인간이 하나님과 필연적으로 갖게 되는 관계가 어떠한지?"를 잘 모릅니다. 둘째는 아담이 행사할 수 있었던 자유의지의 의미에 관해 정확이 모른다는 것입니다. 역으로 이야기하면 인간이 어떤 존재로 창조되었고 또 그가 행사할 수 있는 자유의지의 한계를 분명하게 안다면 제기하신 질문은 비교적 쉽게 해결될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선 이 두 가지 오해부터 명확히 하는 것으로 답변을 시작하겠습니다.    </span></span></span></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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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trong><span style="color:#FF0000;"><span style="font-size:18px;"><span style="font-family:tahoma, geneva, sans-serif;">인간은 어떤 존재인가?</span></span></span></strong></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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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span style="color:#008080;"><span style="font-size:18px;"><span style="font-family:tahoma, geneva, sans-serif;">인간은 잘 알다시피 "하나님의 형상을 닮아 지어진 존재"입니다. 하나님의 형상을 닮았다는 의미는 여러 가지로 해석될 수 있습니다. 그 중에서 본 주제와 연관해서 생각해 볼 수 있는 것은 인격성을 가진 존재-인격체라는 것입니다. 스스로의 지정의로 느끼고 생각하여 결정한 후에 행동을 할 수 있는 존재로서 독립성을 가졌다는 뜻입니다. </span></span></span></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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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span style="color:#008080;"><span style="font-size:18px;"><span style="font-family:tahoma, geneva, sans-serif;">그런데 인간의 독립성은 절대적이지 못하며 상대적입니다. 왜냐하면 인간은 피조물(被造物)로서 모든 삶의 근거를 하나님에게 의존하지 않으면 안 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인간의 인격성 또한 처음 피조 될 때, 즉 범죄 이전의 아담의 경우에도 절대적이지 않고 상대적이었습니다.  </span></span></span></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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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span style="color:#008080;"><span style="font-size:18px;"><span style="font-family:tahoma, geneva, sans-serif;">물론 하나님은 인간을 만드신 후 심히 좋아했습니다. 그래서 그 지정의는 하나님의 수준level)과는 비교할 수 없지만 인간으로서 살아가기에는 전혀 부족함이 없이 완전했습니다. 창조 때의 인간의 지성적 능력과 감정적 깊이와 의지력의 세기는 진화론자들의 주장과는 달리 지금보다 열등하지 않았습니다. 그 때나 지금이나 인간은 세 자리 아이큐를 갖고 희로애락을 풍부하게 느끼며 의지를 사용해 마음대로 선택을 한 후에 행동으로 옮길 수 있습니다. </span></span></span></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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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span style="color:#008080;"><span style="font-size:18px;"><span style="font-family:tahoma, geneva, sans-serif;">그러나 절대적인 인격성은 오직 하나님 한 분 밖에 소유하고 있지 않습니다. 그분의 지정의에 제 삼의 존재가 어떤 영향도 줄 수 없으며 그래서 그분은 영원토록 스스로 자존(自存)하는 유일한 존재입니다. 반면에 인간은 그 존재의 출생, 성장, 종말에 이르기까지 오직 창조주에게 의존해야 하며 또 그분의 뜻대로 그 모든 과정이 이뤄다는 의미에서 그 인격성은 상대적입니다. 아무리 인간의 인격성이 완전하다 해도 결코 피조성을 뛰어 넘어설 수 없습니다.</span></span></span></p>

<p><span style="color:#008080;"><span style="font-size:18px;"><span style="font-family:tahoma, geneva, sans-serif;">    </span></span></span></p>

<p><span style="color:#008080;"><span style="font-size:18px;"><span style="font-family:tahoma, geneva, sans-serif;">그렇다 할지라도 인간은 피조물 가운데 인격성을 갖고 있는 유일한 존재로서 전 우주 가운데 아주 독특한(unique)한 위치를 점하고 있습니다. 하나님과는 닮았지만 100% 같을 수는 결코 없고 마찬가지로 다른 피조물과도 닮았지만 100% 같지 않은 존재입니다. </span></span></span></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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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span style="color:#008080;"><span style="font-size:18px;"><span style="font-family:tahoma, geneva, sans-serif;">인간 다음에 고급한 생물인 동물도 아주 초보적이긴 하지만 지정의를 갖고 있습니다. 지성과 감정뿐 아니라 심지어 의지력을 가지고 어떤 행동을 일관되게 추구하며 서로 의사소통까지 합니다. 갈매기가 조개를 입에 물고 높은 곳에서 콘크리트 바닥에 여러 번 떨어트려 그 속을 까먹는다고 합니다. 조개껍질을 깨기 위해 공중에서 딱딱한 바닥에 떨어트려야겠다고 마음먹고 그것도 되풀이해서 시도하는 것은 벌써 상당한 수준의 지성과 의지가 동원된 표시입니다. </span></span></span></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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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span style="color:#008080;"><span style="font-size:18px;"><span style="font-family:tahoma, geneva, sans-serif;">그러나 동물의 지정의는 어디까지나 생존과 번식이라는 절대적인 틀 안에서 오직 먹고 마시고 살아가는 문제로만 연결됩니다. 사자가 사냥해서 배부르게 먹고 나면 누워 자기만 하지  혹시 사냥감이 떨어질 때를 대비해 남은 것을 저장해 놓으려고 작정하는 법은 없습니다. 동물은 지정의는 있되 스스로 선택할 수 있는 능력을 갖고 있지 못하므로 인격성을 갖고 있다고 말하지 않습니다. </span></span></span></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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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span style="color:#008080;"><span style="font-size:18px;"><span style="font-family:tahoma, geneva, sans-serif;">신학자 안토니오 후크마의 표현대로 인간은 "피조된 인격체(created person)라는 점이 사람의 중심적 신비"라고 할 수 있습니다. 또 다른 피조물, 특별히 동물과 완전히 다르다는 점에서 Leonard Verduin은 인간을 "선택권을 소유한 피조물(creature of option)"이라고 규정지었습니다. 요컨대 자유의지를 갖고 있는 피조물이라는 뜻입니다. </span></span></span></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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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span style="color:#FF0000;"><span style="font-size:18px;"><span style="font-family:tahoma, geneva, sans-serif;">자유의지의 한계 </span></span></span></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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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span style="color:#008080;"><span style="font-size:18px;"><span style="font-family:tahoma, geneva, sans-serif;">인간의 인격성이 창조 때부터 항상 상대적이었다면 그 인격을 구성하는 지정의도 당연히  상대적일 수밖에 없습니다. 말하자면 아담으로 선악과를 따먹도록 이끈 자유의지는 우리가 흔히 이해하는 내용과 다르다는 것입니다.   </span></span></span></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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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span style="color:#008080;"><span style="font-size:18px;"><span style="font-family:tahoma, geneva, sans-serif;">사자는 배고프면 무조건 사냥하러 나갑니다. "지금 기분도 썩 내키지 않고 한 끼 굶는다고 당장 큰 일 나는 것도 아니니 한 끼 정도 굶어볼까?"라고는 아예 생각조차 못합니다. 사냥 아니면 금식 둘 중 하나를 자의적으로 선택할 수 없습니다. 사자도 분명히 사냥하러 갈려고 의지적으로 작정해서 결행했지만 선택을 하지 못했기에 자유 의지가 아닙니다. 그 의지는 하나님이 이미 마련해 놓은 계획안에서만 작동될 뿐이며 100% 하나님 의존적입니다. 동물의 의지는 수동적이며 로봇 같이 프로그램화 된 의지입니다.     </span></span></span></p>

<p><span style="color:#008080;"><span style="font-size:18px;"><span style="font-family:tahoma, geneva, sans-serif;"> </span></span></span></p>

<p><span style="color:#008080;"><span style="font-size:18px;"><span style="font-family:tahoma, geneva, sans-serif;">인간의 경우는 어떻습니까? 배고프면 라면을 먹을까 빵을 먹을까 아니면 한 끼 굶을까 순전히 자신의 지정의로만 판단하여 선택하고 결행합니다. 의지를 사용하는 과정에선 어느 누구로부터도 영향을 받지 않을 수 있습니다. 동물처럼 프로그램화되어 그 의지가 일방적인 선택으로 강요되지 않습니다. 순전히 자의에 의해 선택을 할 수 있습니다.  </span></span></span></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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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span style="color:#008080;"><span style="font-size:18px;"><span style="font-family:tahoma, geneva, sans-serif;">그러나 분명한 것은 인간은 하나님을 떠나서는 아무 것도 할 수 없는 존재입니다. 심지어 하나님이 허락하지 않으면 숨도 쉬지 못합니다. 언제라도 목숨을 거두어 가시면 그대로 따라야 합니다. 분명히 하나의 독립된 인격체로서 생각과 말과 행동을 내 마음대로 할 수 있지만 피조물로서 단지 우리는 진흙에 불과하며 하나님 그분이 토기장이입니다. 인간이 아무 장애 없이 의지를 자유롭게 사용하지만 그렇게 선택하고 결행할 힘 자체도 하나님이 주신 것입니다. 인간의 자유의지는 완전하긴 하지만 상대적일 뿐입니다.     </span></span></span></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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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br />
<span style="color:#008080;"><span style="font-size:18px;"><span style="font-family:tahoma, geneva, sans-serif;">이에 반해 하나님의 의지만은 완전하면서도 절대적으로 자유롭습니다. 그분이 판단하고 선택하고 결정함에 있어 영원토록 어떠한 존재로부터도 전혀 영향을 받지 않습니다. 그래서 마르틴 루터는 심지어 이렇게까지 말했습니다. "나는 '자유의지'라는 단어 자체가 결코 생겨나지 않았으면 한다. 이 말은 성경에도 없는 단어요 아무런 유익이 없는 단어로 마땅히 '자아의지'라고 불렸어야 했다. 자유의지는 명백히 신의 용어로 오직 거룩하신 하나님에게만 적용될 수 있는 것이다. 왜냐하면 그분만이 하늘과 땅에서 하시고자 하는 바를 행하시기 때문이다."</span></span></span></p>

<p> </p>

<p><span style="color:#008080;"><span style="font-size:18px;"><span style="font-family:tahoma, geneva, sans-serif;">본능에 따라 일방적 선택이 강요된 동물의 의지와 달리 인간에게 선택을 자유롭게 할 수 있는 의지를 주신 이는 하나님입니다. 하나님이 인간에게 동물과 전혀 다른 모습의 의지를 주셨다면 당신의 특별한 뜻이 따로 있다는 의미가 됩니다. 나아가 인간이 그 의지를 행사함에 있어서도 반드시 하나님의 뜻에 따라야 하고 의지를 행사한 결과도 하나님의 뜻에 부합되어야만 합니다. 요컨대 아담이 자신의 의지를 사용하는 과정에선 자유로웠지만 반드시 하나님의 뜻에 따라 행사했어야 했고 또 그 결과에 대해서도 자신이 져야할 응분의 책임이 있었다는 것입니다.   </span></span></span></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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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span style="color:#FF0000;"><span style="font-size:18px;"><span style="font-family:tahoma, geneva, sans-serif;">로봇도 동물도 하나님도 아닌 인간</span></span></span></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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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span style="color:#008080;"><span style="font-size:18px;"><span style="font-family:tahoma, geneva, sans-serif;">"하나님이 자기 형상 곧 하나님의 형상대로 사람을 창조하시되 남자와 여자를 창조하시고 하나님이 그들에게 복을 주시며 그들에게 이르시되 생육하고 번성하여 땅에 충만하라 땅을 정복하라 바다의 고기와 공중의 새와 땅에 움직이는 모든 생물을 다스리라 하시니라"(창1:27,28) </span></span></span></p>

<p> </p>

<p><span style="color:#008080;"><span style="font-size:18px;"><span style="font-family:tahoma, geneva, sans-serif;">하나님은 인간을 이 땅에 당신을 대신할 관리자로 세우기 위해 만드셨습니다. 따라서 인간의 정체성(identity)은 하나님의 뜻대로 이 땅의 나머지 모든 피조물을 다스려야 하는 중간적 위치에서만 온전해집니다. 다른 말로 하면 하나님으로선 인간을 상대적 자유의지를 가진 존재로 밖에 만들 수 없었습니다. </span></span></span></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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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br />
<span style="color:#008080;"><span style="font-size:18px;"><span style="font-family:tahoma, geneva, sans-serif;">그렇지 않다면 인간은 다음 세 가지 종류의 형태가 될 수밖에 없습니다. 우선 완전히 절대적인 자유의지를 가진 인간을 생각해 볼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바로 하나님입니다. 하나님이 하나님을 또 다시 만들어 이 땅에 둘 수 없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으로부터 만들어진 존재란 그 자체로 하나님일 수 없기에 절대적 자유 의지를 가질 수 없습니다. 이럴 가능성은 완전히 제로라는 뜻입니다. </span></span></span></p>

<p> </p>

<p><span style="color:#008080;"><span style="font-size:18px;"><span style="font-family:tahoma, geneva, sans-serif;">둘째는 자유의지를 갖되 죄는 전혀 선택하지 못하고 오직 선(善)쪽으로만 일방적으로 강요되는 의지를 가진 인간입니다. 그렇게 되면 인간은 평생 동안 단 하나의 죄도 짓지 않는 절대적으로 선한 존재가 됩니다. 이 또한 따지고 보면 하나님입니다. 또 선택의 여지가 없는 의지란 진정한 자유의지가 아닙니다. 완전히 프로그램에 따라 작동하는 일종의 로봇 같은 인간입니다.  </span></span></span></p>

<p> </p>

<p><span style="color:#008080;"><span style="font-size:18px;"><span style="font-family:tahoma, geneva, sans-serif;">만에 하나 그런 인간이 만들어졌다 해도 이 땅에 선만 있게 되면 벌써 그것은 선이 아닙니다. 악이 없는 곳에서의 선은 단순히 아무 의미 없는 일상사에 불과합니다. 그 반대로 인간을 죄만 짓도록 의지를 작동하게 할 수는 더더욱 없습니다. 하나님은 절대적 선이라 그런 것을 계획조차 할 수 없습니다. </span></span></span></p>

<p> </p>

<p><span style="color:#008080;"><span style="font-size:18px;"><span style="font-family:tahoma, geneva, sans-serif;">셋째는 동물처럼 인간을 만드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하나님이 이 땅을 당신 대신에 다스릴 자가 없어집니다. 한 번 상상해 보십시오. 인간이 한 명도 없고 사자나 공룡만 군림하고 있는 지구의 모습을 말입니다. 하나님이 과연 그런 지구를 만들 의미와 목적과 가치가 있겠습니까? 전혀 없습니다. 창세기 1-2장에 기록된 내용이 바로 온 천하를 오직 인간을 위해서 지으셨다는 것을 증거하고 있지 않습니까? </span></span></span></p>

<p> </p>

<p><span style="color:#008080;"><span style="font-size:18px;"><span style="font-family:tahoma, geneva, sans-serif;">결국 하나님은 인간을 완전히 하나님 같은 존재나 동물이나 일방적으로 프로그램된 로봇 같은 존재로는 결코 만들 수 없었습니다. 대신에 하나님과 영으로 교통하여 그분의 뜻을 알 수 있고 또 자신의 지정의를 동원해 그 뜻대로 이 땅을 다스릴 수 있는 존재로 만들어야만  했습니다. </span></span></span></p>

<p> </p>

<p><br />
<span style="color:#008080;"><span style="font-size:18px;"><span style="font-family:tahoma, geneva, sans-serif;">시편 기자가 인간의 정체성을 두고 어떻게 표현했습니까? </span></span></span></p>

<p><span style="color:#008080;"><span style="font-size:18px;"><span style="font-family:tahoma, geneva, sans-serif;">"사람이 무엇이관대 주께서 저를 생각하시며 인자가 무엇이관대 주께서 저를 권고하시나이까 저를 천사보다 조금 못하게 하시고 곧 영화와 존귀로 관을 쒸우셨나이다. 주의 손으로 만드신 것을 다스리게 하시고 만물을 그 발 아래 두셨으니."(시8:4-6) </span></span></span></p>

<p> </p>

<p><span style="color:#008080;"><span style="font-size:18px;"><span style="font-family:tahoma, geneva, sans-serif;">천사는 아니지만 천사와 거의 방불한 정도의 영적인 존재로서 이 땅에서 하나님의 대리자로 서 있는 것이 인간이라고 합니다. 말하자면 비록 상대적이긴 하지만 피조물 가운데 유일하게 자유로운 선택권을 가진 것이 너무나 큰 은혜라 창조주 하나님께 감사하며 찬양한다는 것입니다. 인간의 자유의지가 상대적일 수밖에 없다는 바로 그것이 오히려 인간이 인간된 신비적 중심이자 하나님의 큰 축복입니다. </span></span></span></p>

<p> </p>

<p><span style="color:#008080;"><span style="font-size:18px;"><span style="font-family:tahoma, geneva, sans-serif;">아담에게 자유의지를 주어서 선택하게 해 놓고 왜 벌을 주는가라는 질문은 그 의지가 과정뿐 아니라 책임까지 절대적으로 자유스러운 의지였다면 합당한 의심이자 불만입니다. 마음대로 하라고 했기에 마음대로 한 것을  두고 책임을 물을 수 없지 않습니까? 그러나 그가 받은 자유의지는 하나님 뜻 안에서만 사용되어지고 또 그 결과도 하나님 뜻 안에서 인간의 책임이 되는 상대적 자유의지였습니다. 따라서 이 진리만 정확히 인식한다면 처음부터 성립 될 수 없는 질문입니다. 만약 자꾸 그 문제를 따지고 드는 것은 인간을 인간이 아닌 다른 존재로 만들어주거나 아예 태어나지 말게 했어야 옳았다고 주장하는 것과 같은 의미가 됩니다. </span></span></span></p>

<p> </p>

<p> </p>

<p><span style="color:#FF0000;"><span style="font-size:18px;"><span style="font-family:tahoma, geneva, sans-serif;">선악과는 오히려 축복</span></span></span></p>

<p> </p>

<p><span style="color:#008080;"><span style="font-size:18px;"><span style="font-family:tahoma, geneva, sans-serif;">대체로 신자들은 선악과 사건을 보면서 홍시가 주렁주렁 열린 가지가 담장 밖으로 넘어가도록 방치 해놓고는 동네 아이들이 따먹기만 기다렸다가 벌을 주는 심술궂은 할아버지를 연상합니다. 하나님이 인간에게 선악과를 따먹을 줄 미리 알고도 자유의지를 주어 놓고는 따먹자마자 벌을 주었다는 것입니다. </span></span></span></p>

<p><br />
<span style="color:#008080;"><span style="font-size:18px;"><span style="font-family:tahoma, geneva, sans-serif;">하나님이 선악과를 에덴동산에 두시고선 아담에게 어떻게 말했습니까?</span></span></span></p>

<p> </p>

<p><span style="color:#008080;"><span style="font-size:18px;"><span style="font-family:tahoma, geneva, sans-serif;">"동산 각종 나무의 실과는 네가 임의로 먹되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실과는 먹지 말라 네게 먹는 날에는 정녕 죽으리라"(창2:16,17) </span></span></span></p>

<p> </p>

<p><span style="color:#008080;"><span style="font-size:18px;"><span style="font-family:tahoma, geneva, sans-serif;">인간이 자기 의지를 무한정 사용할 수 있다고 하지 않았습니다. 선악과만은 따 먹을 수 없다고 그 한계를 분명히 정해 주었습니다. 아담에게 준 의지는 무엇이든 마음먹은 대로 할 수 있는 절대적 자유의지가 아니라 상대적 자유의지였습니다.    </span></span></span></p>

<p> </p>

<p><span style="color:#008080;"><span style="font-size:18px;"><span style="font-family:tahoma, geneva, sans-serif;">따라서 하나님 당신의 임재의 상징인 선악과는 역으로 말해 아담에게 자신의 정체성도 깨닫게 해주는 나무였습니다. 다른 과일은 다 먹을 수 있지만(=이 땅의 만물을 하나님을 대리하여 다스릴 수 있는데) 선악과는 먹지 말라.(=어디까지나 나를 대신하는 대리인, 즉 피조물임을 잊지 말라.) </span></span></span></p>

<p> </p>

<p><span style="color:#008080;"><span style="font-size:18px;"><span style="font-family:tahoma, geneva, sans-serif;">그렇지만 그 금령(禁令)에 벌을 주겠다는 것을 전제로 해서 인간의 활동을 제한시키려는 의도는 추호도 없었습니다. 오히려 인간은 하나님의 품 안에 있을 때만이 참 생명을 누릴 수 있다는 축복의 징표이자 약속이었습니다. 비유컨대 복잡한 쇼핑 몰에 엄마가 아기의 손을 잡고 걸어가면서 "네가 들어 가보고 싶은 가게는 어디든지 전부 다 가도 되는데 단 엄마 손은 절대 놓으면 안 돼"라고 말한 것과 같습니다. 엄마가 아기가 하고 싶은 일을 하지 못하게 만들거나 그 명령에 반항하여 대들지 말라고 엄포를 놓은 것이 아니지 않습니까? 엄마 손을 꼭 붙들고 있어야 안전하고 또 엄마랑 함께 즐겁게 쇼핑하자는 뜻입니다. </span></span></span></p>

<p> </p>

<p><span style="color:#008080;"><span style="font-size:18px;"><span style="font-family:tahoma, geneva, sans-serif;">그래서 어거스틴은 이처럼 엄마 손을 놓치지 않으면 모든 가게를 다 갈 수 있는 자유였기에 아담의 자유의지를  "죄를 짓지 않을 수 있는" 자유라고 표현했습니다. 비록 하나님의 뜻 안에서 그 의지를 사용하여 그 결과도 하나님의 뜻에 제한을 받는 상대적 자유였지만, 선악과는 인간에게 형벌과 저주로 가는 장애가 아니라 하나님의 축복을 받을 수 있는 너무나 귀한 은혜였습니다. </span></span></span></p>

<p> </p>

<p><br />
<span style="color:#008080;"><span style="font-size:18px;"><span style="font-family:tahoma, geneva, sans-serif;">그러나 아담은 그 은혜를 어떻게 변질 시켰습니까? 자신의 의지를 의도적으로 작동해 사단의 유혹을 받아들여 선악과를 따 먹어 버렸습니다. 단순히 하나님의 금지 명령을 어긴 것이 문제가 아니라 인간이 하나님의 품 안에 있는 것이 은혜라는 약속을 의심하고 발로 차버렸습니다. 다시 비유컨대 쇼핑몰에서 엄마가 손을 꼭 잡고 있으니 자기 마음 내키는 대로 가게를 못 가게 막는다고 오해한 어린 딸이 그 손을 뿌리치고 수많은 쇼핑객 사이를 뚫고 혼자서 쵸코렛 가게로 뛰어 들어 가버린 셈입니다. 단 하나 엄마 손을 놓지 말라는 속박(사실은 축복인데도)조차 귀찮고 싫어서 엄마 품을 뛰쳐나간 것입니다. </span></span></span></p>

<p> </p>

<p><span style="color:#008080;"><span style="font-size:18px;"><span style="font-family:tahoma, geneva, sans-serif;">아담도 선악과만은 따먹지 말라는 상대적 자유의지가 싫어서 무엇이든 자기 마음대로 하는 절대적 자유의지로 바꾸려고 시도했습니다. 하나님만이 갖고 또 가질 수 있는 절대적 자유의지가 탐이 났던 것입니다. "선악과를 못 먹게 하는 하나님이 나에게 무슨 소용이 있어! 그런 하나님은 나에게 아무 필요 없어! 나는 무엇이든 내 마음대로 하고 그 책임도 내가 질꺼야!" 하나님의 자리를 자기가 차지하고 올라서겠다는 극도의 교만이었습니다. </span></span></span></p>

<p> </p>

<p><span style="color:#008080;"><span style="font-size:18px;"><span style="font-family:tahoma, geneva, sans-serif;">그런데 자기 손을 꼭 붙들고 있는 엄마가 귀찮고 싫어 쵸코렛 가게로 뛰어 든 어린 딸의 심정은 어떠했겠습니까? 혹시라도 엄마가 자기를 쫓아올까 일부러 인파 속에 숨어버린 그 아이에게 어떤 일이 일어났겠습니까? 처음에는 신이 나서 이것저것 구경하겠지만 막상 사먹으려니 돈이 없어서 단 한 개도 살 수 없습니다. 배는 고파 오고 자꾸 시간은 흘러 쇼핑객은 다 빠져 나가고 어두워집니다. 갑자기 겁이 덜컥 났습니다. 두렵고 떨리기 시작합니다. </span></span></span></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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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span style="color:#008080;"><span style="font-size:18px;"><span style="font-family:tahoma, geneva, sans-serif;">아담도 죄를 지은 이후에 두렵고 부끄러워졌습니다. 하나님을 부인하면 상대적 자유의지가 절대적 자유의지로 바뀔 줄 알았는데 전혀 그렇지 못하고 오히려 더 부자유스러워졌습니다.  이전과는 달리 심령에 평강과 자유는 완전히 없어지고 대신에 불안과 공허만 가득 찼습니다. 이미 그의 영혼에 사단이 자리 잡아 하나님과 원수 되었고 죄의 노예가 된 것입니다. 어그스틴의 표현에 따르면 "죄를 짓지 않을 수"(posse non peccare)" 있는 자유가 이제는 "죄를 안 지을 수 없는(non posse non peccare)" 자유로 바뀌어버린 것입니다. </span></span></span></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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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br />
<span style="color:#008080;"><span style="font-size:18px;"><span style="font-family:tahoma, geneva, sans-serif;">아담이 범죄 하기 전에 하나님의 뜻 안에서 갖고 있던 상대적 자유의지는 마음대로 선을 택할 수 있고(모든 실과를 따 먹을 수 있되), 죄에서 자유로울 수 있도록(선악과만은 먹어선 안 되는) 의도된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범죄 후에는 여전히 그 의지는 상대적이지만 이제는 사단에게 제한을 받는 것으로 바뀌었습니다. 죄에서 도저히 자유로울 수 없고(선악과를 따먹어 하나님을 배반하고 사단 쪽으로 향했으므로), 모든 선한 것을 할 수 있는 능력은 상실(동산의 다른 실과마저도 못 먹게 에덴에서 추방되었으므로)된 것입니다.  </span></span></span></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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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span style="color:#008080;"><span style="font-size:18px;"><span style="font-family:tahoma, geneva, sans-serif;">그야말로 선악과를 따 먹느냐 안 먹느냐는 하나님의 말씀 그대로 인간에게 선과 악을 알게 하는 분기점이자 죽음의 형벌이 따르는 문제였습니다. 하나님의 품 안을 벗어나면 사단의 노예가 되는 길 말고는 없습니다. 그 중간지대는 없습니다. 육신적으로는 살아 있을지 몰라도 영적으로는 완전히 죽은 자가 됩니다. 나아가 얼마든지 선을 행할 수 있는 자유를 버리고 오로지 악만 행하는 자유를 택했었습니다. </span></span></span></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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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span style="color:#008080;"><span style="font-size:18px;"><span style="font-family:tahoma, geneva, sans-serif;">이름 그대로 따먹지 않으면 선을, 따먹으면 악을 철저하게 알게 해주는 나무였습니다. 하나님의 뜻을 따라 선을 행할 수 있는 자유를 의지적으로 버리고 도리어 적극적으로 사단의 종이 되어 악을 추구한 인간의 죄악은 크게 비난 받아 마땅합니다. 또 하나님의 품을 떠났으니 필연적으로 죽을 수밖에 없는 형벌이 따르게 됩니다. </span></span></span></p>

<p><span style="color:#008080;"><span style="font-size:18px;"><span style="font-family:tahoma, geneva, sans-serif;"> </span></span></span></p>

<p><span style="color:#008080;"><span style="font-size:18px;"><span style="font-family:tahoma, geneva, sans-serif;">만약에 아담이 선악과를 따 먹지 않았다면 어떻게 되었겠습니까? 쉽게 말해 쇼핑 몰에서 딸아이가 엄마 손을 놓지 않았더라면 얼마든지 엄마랑 그 몰 안에 있는 모든 가게를 다 구경하고 쇼핑하며 너무나 즐겁게 지낼 수 있었지 않겠습니까? 물론 여전히 쇼핑 몰 안에는 사람들이 많아 길을 잃거나 엄마를 놓칠 위험이 없어진 것은 아니지만 엄마가 손을 붙들고 있기에 그런 염려를 할 필요가 전혀 없습니다.  </span></span></span></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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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br />
<span style="color:#008080;"><span style="font-size:18px;"><span style="font-family:tahoma, geneva, sans-serif;">아담도 마찬가지였습니다. 여전히 선악과는 동산 중앙에 있고 사단은 항상 유혹할 것입니다. 그러나 그가 하나님의 품 안에 있는 것만이 자신의 행복과 만족의 근원이라는 확신에 흔들림이 없었다면 그는 선을 행할 자유를 마음껏 누리며 죄의 무서운 형벌을 받지 않을 수 있었습니다. 선악과는 이처럼 하나님의 축복이지 인간을 죄악에 빠트리는 걸림돌이 결코 아니었습니다. 쇼핑 몰에서 엄마 손을 절대 놓지 말라고 당부하는 엄마가 나쁜 것은 아니지 않습니까? 하나님이 죄를 방조한 것이 아니라 아담이 죄 쪽으로 자진해서 뛰어간 것입니다.    </span></span></span></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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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span style="color:#FF0000;"><span style="font-size:18px;"><span style="font-family:tahoma, geneva, sans-serif;">하나님은 타락을 알고도 왜 선악과를 두었는가?</span></span></span></p>

<p> </p>

<p><span style="color:#008080;"><span style="font-size:18px;"><span style="font-family:tahoma, geneva, sans-serif;">이 문제에 답하기 전에 먼저 불신자의 경우를 잠시 생각해 봅시다. 그들은 자신이 하나님의 피조물이라는 인식이 전혀 없습니다. 대신에 우연히 물질에서 진화 되어진 존재로 동물 중에 가장 고급한 동물로 보거나, 자연을 구성하는 한 일부로서 그 구체적 과정은 모르지만 뛰어난 지정의를 갖게 된 특이한 존재로 봅니다. 따라서 그들은 자유의지에 대해서도 이 두 가지 측면에서만 생각합니다.  </span></span></span></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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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span style="color:#008080;"><span style="font-size:18px;"><span style="font-family:tahoma, geneva, sans-serif;">첫째는 동물이 갖고 있는 의지와 동일시합니다. 생존과 번식의 본능만 충족시키는 방향으로 동물의 의지가 작동되듯이, 그들도 자신의 지정의-인격을 오직 먹고 마시고 입는 일에만 사용합니다. 스스로 인간이기를 거부하고 자신을 동물로 비하시키는 셈입니다. 진화를 믿어 원숭이를 자기들 할아버지로 모시니 그럴 수 밖에 없습니다. 하나님의 형상을 닮은 인격을 갖춘 인간이 아니라 동물의 본능을 닮은 인격체, 정확히는 조금 고급한 본능을 가진 동물입니다. </span></span></span></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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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span style="color:#008080;"><span style="font-size:18px;"><span style="font-family:tahoma, geneva, sans-serif;">다른 하나는 인간이 자연의 일부이긴 하지만  그 자연에서 최고라고 생각합니다. 모든 것이 인간이 생각하고 행동하기 나름이라는 것입니다. 인간이 우주의 주인으로 그 위에 아무 것도 없으므로 마치 절대적 자유의지를 가진 양 행동합니다. 모든 것을 인간이 판단, 선택, 결행하고 그 결과도 인간이 책임지면 된다는 것입니다.</span></span></span></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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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pan style="color:#008080;"><span style="font-size:18px;"><span style="font-family:tahoma, geneva, sans-serif;">그러나 하나님을 부인하고 인간이 독단적으로 이룬 일들이 궁극적으로 선한 열매를 맺는 법은 절대 없습니다. 인류 역사의 전개 과정을 보더라도 물질적, 기술적 진보는 있을지 몰라도 정신적 영적 진보는 하나도 없습니다. 오히려 갈수록 불안 염려가 인간을 옭아매며 죄의 타락은 절정에 이르렀습니다. 인간  스스로 절대적 자유의지를 주장한 결과입니다. 인간이 선한 열매를 맺을 수 있는 유일한 길은 하나님의 뜻 안에서 자유의지를 행사할 때뿐입니다. </span></span></span></p>

<p> </p>

<p><span style="color:#008080;"><span style="font-size:18px;"><span style="font-family:tahoma, geneva, sans-serif;">신자는 다릅니다. 인간의 정체성을 오직 피조된 인격체라는 관점에서만 확인합니다. 그에 따라 모든 신자의 삶에는 두 가지 목적이 있습니다. 하나는 지금껏 살펴본 대로 이 땅을 하나님 대신에 거룩하게 다스리는 것입니다. 그 목적을 이루라고 하나님은 당신을 닮은 인격성을 선물로 주셨습니다. </span></span></span></p>

<p> </p>

<p><span style="color:#008080;"><span style="font-size:18px;"><span style="font-family:tahoma, geneva, sans-serif;">둘째는 피조물로서 하나님께 모든 영광을 돌리며 그분과 교제하며 동행하는 것입니다. "이 백성은 내가 나를 위하여 지었나니 나의 찬송을 부르게 하려 함이니라."(사43:21) 당신을 대신해 이 땅을 다스리는 것은 인간 삶의 피조세계를 향한 하향적 목적이라면, 인간이 하나님을 찬양하는 것은 하나님을 향한 상향적 목적입니다. </span></span></span></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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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span style="color:#008080;"><span style="font-size:18px;"><span style="font-family:tahoma, geneva, sans-serif;">그래서 하나님이 선악과를 두신 이유는 바로 이 두 가지 삶의 목적을 매일 상기하라는 뜻입니다. 매일 매 순간 동산 중앙에 있어서 자기를 결코 떠나지 아니하시는 하나님과 교제하고 동행하면서 이 땅을 거룩하게 다스리고 또 찬양과 감사로 그분께 모든 영광을 돌리라는 것입니다.</span></span></span></p>

<p> </p>

<p><br />
<span style="color:#008080;"><span style="font-size:18px;"><span style="font-family:tahoma, geneva, sans-serif;">만약에 에덴동산에 선악과가 없이 하나님이 모든 실과를 마음 놓고 다 따먹으라고 했다면 어떻게 됩니까? 아담은 자신이 상대적 자유의지가 아니라 절대적 자유의지를 받은 양 오해하게 됩니다. 무엇이든 자기 마음대로 합니다. 하나님이 따로 계심을 알지 못하거나 잊게 됩니다. 하나님으로선 아담에게 당신의 실체를 직접 보여줄 수는 없고 당신의 표상을 심어주어야 했습니다. 환언하면 아담에게 하나님 당신의 임재하심과 또 그 뜻대로 사는 것이 좋다는  어떤 시험 내지 훈련의 과정은 반드시 있어야 했습니다.     </span></span></span></p>

<p> </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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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span style="color:#008080;"><span style="font-size:18px;"><span style="font-family:tahoma, geneva, sans-serif;">그 반대로 에덴동산의 선악과를 포함한 모든 과일을 절대로 먹지 말라고 했다면 어떻게 됩니까? 처음부터 지킬 수 없는 명령입니다. 굶어 죽으라는 명령과 같기 때문입니다. 아예 어떤 과일이라도 주지 말았어야 합니다. 그렇다고 선악과를 섭씨 수만 도의 고열을 내뿜는 나무로 만들 수도 없습니다. 구태여 말을 안 해도 도저히 접근 할 수 없으므로 금령을 지킬 수밖에 없습니다. 이 두 케이스는 겉으로는 자유를 준 것 같지만 내면적으로는 전혀 자유가 없이 인간을 하나님의 노예로 삼은 것입니다. 선악과는 항상 따 먹을 수 있으되 말씀으로만 금하는 형식을 취해야만 시험과 훈련의 목적이 달성 될 수 있습니다. </span></span></span></p>

<p> </p>

<p><span style="color:#008080;"><span style="font-size:18px;"><span style="font-family:tahoma, geneva, sans-serif;">나아가 그런 형식 대신에 인간의 순종을 어떤 현실적, 육신적 어려운 조건을 붙여서 그것을 지켜내는 지로 테스트했다면 어떻게 됩니까? 그 테스트에 아담이 성공한 경우는 자기 스스로의 공적으로 구원을 취득한양 착각하고 자랑이 따르며 하나님에게 감사가 없어집니다. 반대로 아담이 그런 테스트에 실패하면 하나님이 구원을 베풀 기회는 영영 상실 됩니다. 하나님은 당신의 약속을 스스로 뒤집지 못하는 신실한 분이기 때문입니다. 요컨대 선악과는 성경에 기록된 그대로의 모습으로 반드시 있어야 했던 하나님의 은혜라는 것입니다.    </span></span></span></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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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span style="color:#008080;"><span style="font-size:18px;"><span style="font-family:tahoma, geneva, sans-serif;">이해하기 쉬운 예를 들어 봅시다. 아주 큰 갑부가 오랫동안 여행을 떠나면서 아들에게 집을 맡기고 갔습니다. 차고에는 온갖 차들이 즐비하게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 중에는 아버지가 가장 아끼는 벤즈 600이 있었습니다. 그래서 여행을 떠나면서 다른 차는 다 타도되지만 그 차만은 타지 말라고 당부하고 떠났습니다. 그런데 차고와 차의 열쇠를 다 주면서 그 차의 열쇠를 주지 않고 가면 어떻게 됩니까? 순종의 테스트가 아니라 아예 아들을 믿지 못한  것입니다. 둘 사이에 올바르고 진실 된 관계는 결코 생길 수 없습니다. 차라리 그런 말을 안 하는 것이 낫습니다. </span></span></span></p>

<p> </p>

<p><br />
<span style="color:#008080;"><span style="font-size:18px;"><span style="font-family:tahoma, geneva, sans-serif;">그렇다고 모두 다 타도된다고 완전히 방임한다든지, 아니면 하나도 타지 말라고 무조건 금지시켜도 아들과 아버지의 관계가 성립될 수 없음은 마찬가지입니다. 하나님은 선악과를 통해 아담과 진실된 아버지와 아들로서의 사랑과 신뢰의 관계를 맺고 싶어 했던 것입니다. 다른 말로 하면 설령 아들이 그 벤즈를 몰고 나가 사고가 나는 한이 있더라도 열쇠를 주고 가고 싶은 것이 아버지의 마음이라는 뜻입니다. 그렇게 안 하고 자기 말대로 잘 따라준다면 더 바랄 나위가 없지만 설령 자기 말을 위반하더라도 아버지와 아들의 관계에 결코 손상이 가지 않습니다. </span></span></span></p>

<p> </p>

<p><br />
<span style="color:#008080;"><span style="font-size:18px;"><span style="font-family:tahoma, geneva, sans-serif;">이처럼 선악과는 너무나 선하며 은혜로운 하나님의 뜻 가운데 있었습니다. 말하자면 하나님이 인간의 타락을 의도하고 계획한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그러나 전지전능하시고 시간에 구애를 받지 않고 영원까지 다 알고 계시는 하나님으로선 아담이 타락하리라는 것을 미리 알았습니다. 사단이란 영적 존재가 인간의 창조 이전에 이미 있었고 그보다 영적인 능력이 뒤지는 인간으로선 틀림없이 사단에게 넘어가리라는 것을 다 알고 계셨습니다. </span></span></span></p>

<p> </p>

<p><span style="color:#008080;"><span style="font-size:18px;"><span style="font-family:tahoma, geneva, sans-serif;">그럼에도 "하나님이 미리 알았다면 막아 주실 수 있지 않았느냐?"라는 질문은 전혀 논리적이 되지 않습니다. 앞에서 길게 따져 본대로 인간을 하나님이나, 동물이나, 로봇 셋 중에 하나로 만들어 달라는 요구 밖에 안 되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인간이 타락할 줄 미리 알았어도 인간을 꼭 당신의 형상대로 닮게 만드시길 원했던 것입니다. </span></span></span></p>

<p> </p>

<p><span style="color:#008080;"><span style="font-size:18px;"><span style="font-family:tahoma, geneva, sans-serif;">또 다른 더 결정적인 이유는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통한 구원의 계획이 태초부터 다 마련되어 있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만약에 예수가 없었다면 인간의 타락을 처음부터 허용하지 않았고, 아니 인간 자체를 만들지 않았을 것입니다. 그 외의 다른 대안은 없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타락이 따를 것을 아시고도 예수가 있기에 천지를 창조하시고 인간을 가장 인간다운 모습, 피조된 인격성을 가진 존재로 만드신 것입니다. </span></span></span></p>

<p> </p>

<p><span style="color:#008080;"><span style="font-size:18px;"><span style="font-family:tahoma, geneva, sans-serif;">"그는 보이지 아니하시는 하나님의 형상이요 모든 창조물보다 먼저 나신 자니 만물이 그에게 창조되되 하늘과 땅에서 보이는 것들과 보이지 않는 것들과 혹은 보좌들이나 주관들이나 정사들이나  권세들이나 만물이 다 그로 말미암고 그를 위하여 창조되었고 또한 그가 만물보다 먼저 계시고 만물이 그 안에 함께 섰느니라"(골·1:15-17)</span></span></span></p>

<p> </p>

<p><br />
<span style="color:#008080;"><span style="font-size:18px;"><span style="font-family:tahoma, geneva, sans-serif;">말하자면 하나님은 잠시 동안 인간을 사단의 수중에 놓아두신 것입니다. 때가 차서 예수님이 구원해 낼 때까지 인간을 죄의 종으로 지내게 했습니다. 또 다시 하나님이 병 주고 약 준 것으로 오해하면 안 됩니다. 병은 분명히 아담이 잘못해서 난 것입니다. 하나님으로선  아담에게 병이 날 것을 아시고 그 구원책까지 미리 마련해 놓은 것이지 일부러 병을 준 것이 아닙니다.</span></span></span></p>

<p> </p>

<p><br />
<span style="color:#008080;"><span style="font-size:18px;"><span style="font-family:tahoma, geneva, sans-serif;">쇼핑 몰에서 엄마 손을 뿌리치고 혼자 뛰어간 아이가 어디에 있을지 엄마는 압니다. 그래서  초코렛 가게로 바로 찾아 갈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당장에 뛰어가 구하지 않습니다. 아이가 엄마 손을 놓고 간 것이 얼마나 큰 잘못인지, 신나고 즐거울 줄만 알았는데 오히려 두렵고 무서운 일이라는 것을 스스로 절실하게 깨달을 수 있을 때까지 혼자 두고 봅니다. 그러나 아기 몰래 뒤를 쫓아다닙니다. 결정적인 순간에 나타나 구원해 줍니다. 마찬가지로 하나님은 죄인들을 두고 보시다가 때가 차 매 당신께서 직접 인간의 몸으로 이 땅에 오셔서 죄와 사단과 사망의 노예가 되어 있던 인간을 십자가로 구원해 주셨습니다. </span></span></span></p>

<p> </p>

<p><span style="color:#008080;"><span style="font-size:18px;"><span style="font-family:tahoma, geneva, sans-serif;">결론을 맺겠습니다. 이 질문은 신자가 앞에서 인용했던 시편 기자의 찬양을 진심으로 함께 부를 수 있다면 저절로 해답을 가진 셈입니다. 인간을 인격성을 갖춘 유일한 피조물로 만드시고, 상대적 자유의지를 갖게 해 주고, 천사보다 조금 못하지만 이 땅을 다스리게 하고, 비록 아담이 실패했지만 선악과를 통해 하나님과 매일 교제하며 그분께만 영광을 돌릴 수 있게 해 준 것들이 얼마나 큰 은혜입니까? 다른 말로 하면 인간을 로봇이나 동물로 만들지 않고 당신의 형상대로 만드신 것이 얼마나 큰 축복입니까?    </span></span></span></p>

<p> </p>

<p><span style="color:#008080;"><span style="font-size:18px;"><span style="font-family:tahoma, geneva, sans-serif;">에덴동산에 선악과를 두시고 아담으로 하여금 타락할 줄 알고도 자유의지를 주신 뜻은 당신께서 거룩하고 온전하니 그도 거룩하고 온전해지라는 것입니다. 죄에서 자유로워지라고 당신을 닮은 인격성을 심어 주었는데 오히려 죄에 묶이는 일에 그 자유의지를 써버린 인간이 그런 자유를 주신 하나님께 거꾸로 책임을 물을 수는 도저히 없지 않습니까? </span></span></span></p>]]></description>
	<dc:creator>예수사랑</dc:creator>
		<dc:date>Fri, 15 Aug 2025 04:06:50 +0900</dc:date>
	</item>
	<item>
	<title>기독교 용어 바로잡기</title>
	<link>http://www.aion21.kr/bbs/board.php?bo_table=free&amp;wr_id=274</link>
	<description><![CDATA[<p><span style="font-size:18px;"><span style="font-family:tahoma, geneva, sans-serif;">&lt;기독교 용어 바르게 사용하기&gt;</span></span></p>

<p> </p>

<p><span style="font-size:18px;"><span style="font-family:tahoma, geneva, sans-serif;">대한예수교장로회(통합) 제85회 총회에서 구성된 기독교용어연구위원회가 연구하여 정리하고, 제86회 총회와 제87회 총회에서 채택, 가결한 새로운 기독교 용어와 변경된 기독교 용어를 정리했습니다. </span></span></p>

<p><span style="font-size:18px;"><span style="font-family:tahoma, geneva, sans-serif;">신앙생활에 좋은 참고가 되기를 바랍니다.</span></span></p>

<p> </p>

<p> </p>

<p style="text-align:center;"><img itemprop="image" content="http://www.aion21.kr/data/editor/2508/3232235521_1755196372.4.jpg" src="http://www.aion21.kr/data/editor/2508/3232235521_1755196372.4.jpg" alt="" class="img-tag " style="width:525px;"/></p>

<p> </p>

<p> </p>

<p><span style="font-size:18px;"><span style="font-family:tahoma, geneva, sans-serif;">변경된 새로운 기독교 용어에 대한 요약</span></span></p>

<p> </p>

<p><span style="font-size:18px;"><span style="font-family:tahoma, geneva, sans-serif;">1) 기도 관련 용어</span></span></p>

<p> </p>

<p><span style="font-size:18px;"><span style="font-family:tahoma, geneva, sans-serif;">① 당신→ 하나님, 하나님 아버지</span></span></p>

<p><span style="font-size:18px;"><span style="font-family:tahoma, geneva, sans-serif;">② 기도드렸습니다(기도하였습니다)→ 기도드립니다(기도합니다)</span></span></p>

<p><span style="font-size:18px;"><span style="font-family:tahoma, geneva, sans-serif;">③ 주여, 하나님 아버지시여→ 주님, 하나님 아버지</span></span></p>

<p><span style="font-size:18px;"><span style="font-family:tahoma, geneva, sans-serif;">④ 우리 성도들이→ 저희들이, 교회의 권속들이</span></span></p>

<p><span style="font-size:18px;"><span style="font-family:tahoma, geneva, sans-serif;">⑤ 대표기도→ 기도인도</span></span></p>

<p><span style="font-size:18px;"><span style="font-family:tahoma, geneva, sans-serif;">⑥ 사랑의 예수님→ 사랑의 하나님</span></span></p>

<p><span style="font-size:18px;"><span style="font-family:tahoma, geneva, sans-serif;">⑦ 참 좋으신 하나님→ 거룩하신, 은혜로우신, 전능하신, 진실하신, 자비로우신 하나님</span></span></p>

<p> </p>

<p> </p>

<p><span style="font-size:18px;"><span style="font-family:tahoma, geneva, sans-serif;">2) 예배, 예식 관련 용어</span></span></p>

<p> </p>

<p><span style="font-size:18px;"><span style="font-family:tahoma, geneva, sans-serif;">① 사회자→ 인도자(예배시)</span></span></p>

<p><span style="font-size:18px;"><span style="font-family:tahoma, geneva, sans-serif;">② 성가대→ 찬양대</span></span></p>

<p><span style="font-size:18px;"><span style="font-family:tahoma, geneva, sans-serif;">③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사용불가</span></span></p>

<p><span style="font-size:18px;"><span style="font-family:tahoma, geneva, sans-serif;">④ 대예배→주일예배</span></span></p>

<p><span style="font-size:18px;"><span style="font-family:tahoma, geneva, sans-serif;">⑤ 헌금→ 봉헌</span></span></p>

<p><span style="font-size:18px;"><span style="font-family:tahoma, geneva, sans-serif;">⑥ 하나님의 축복→ 하나님이 주신 복</span></span></p>

<p><span style="font-size:18px;"><span style="font-family:tahoma, geneva, sans-serif;">⑦ 하나님! 축복하여 주시옵소서→ 하나님! 복 주시옵소서</span></span></p>

<p><span style="font-size:18px;"><span style="font-family:tahoma, geneva, sans-serif;">⑧ 준비찬송→ 사용불가</span></span></p>

<p><span style="font-size:18px;"><span style="font-family:tahoma, geneva, sans-serif;">⑨ 축제→ 잔치</span></span></p>

<p> </p>

<p> </p>

<p><span style="font-size:18px;"><span style="font-family:tahoma, geneva, sans-serif;">3) 교회 생활 용어</span></span></p>

<p> </p>

<p><span style="font-size:18px;"><span style="font-family:tahoma, geneva, sans-serif;">① 당회장→ 담임목사(당회장→ 당회 때만)</span></span></p>

<p><span style="font-size:18px;"><span style="font-family:tahoma, geneva, sans-serif;">② 예수→ 예수님, 성령→ 성령님</span></span></p>

<p><span style="font-size:18px;"><span style="font-family:tahoma, geneva, sans-serif;">③ 사모→ 사모님(‘사모’는 주로 제자나 평신도들이 선생 부인이나 목사 부인을 높여 불러 주는 말이기 때문에 ‘사모님’이 될 수밖에 없다.)</span></span></p>

<p><span style="font-size:18px;"><span style="font-family:tahoma, geneva, sans-serif;">④ 천당(‘천당’이라는 어휘는 우리말 성경에 없을 뿐만 아니라 ‘천당 사상’은 기독교 신학과 차이가 있다→ 하나님 나라, 하늘나라, 천국</span></span></p>

<p><span style="font-size:18px;"><span style="font-family:tahoma, geneva, sans-serif;">⑤ 제단→ 성단, 제물→ 예물</span></span></p>

<p><span style="font-size:18px;"><span style="font-family:tahoma, geneva, sans-serif;">⑥ 하나님의 몸된 교회→ 그리스도의 몸된 교회</span></span></p>

<p><span style="font-size:18px;"><span style="font-family:tahoma, geneva, sans-serif;">⑦ 전야제→ 전야 축하행사</span></span></p>

<p><span style="font-size:18px;"><span style="font-family:tahoma, geneva, sans-serif;">⑧ 태신자(이 용어를 사용하게 되면 앞으로 목사나 장로가 되기를 바라고 기도하는 사람은 ‘태목사’, ‘태장로’라고 해도 괜찮다는 결론에 이른다.)→ 전도대상자</span></span></p>

<p><span style="font-size:18px;"><span style="font-family:tahoma, geneva, sans-serif;">⑨ 입신→ 사용불가</span></span></p>

<p><span style="font-size:18px;"><span style="font-family:tahoma, geneva, sans-serif;">⑩ 지금도 살아 계신 하나님→ 지금도 살아 계셔서 역사하시는 하나님 등이다.</span></span></p>

<p> </p>

<p> </p>

<p><span style="font-size:18px;"><span style="font-family:tahoma, geneva, sans-serif;">변경된 이유에 대한 설명</span></span></p>

<p> </p>

<p><span style="font-size:18px;"><span style="font-family:tahoma, geneva, sans-serif;">1. 당신 → 하나님, 하나님 아버지</span></span></p>

<p> </p>

<p><span style="font-size:18px;"><span style="font-family:tahoma, geneva, sans-serif;">우리가 기도할 때 “하나님 아버지, 당신께서 세우신 이 교회를…”과 같이 하나님을 ‘당신’이라 부르는 것을 종종 보는데 이것은 잘못된 것이다.</span></span></p>

<p><span style="font-size:18px;"><span style="font-family:tahoma, geneva, sans-serif;">⇒ 기도할 때 하나님은 우리의 말을 직접 들으시는 분으로서 2인칭이다. 우리말 2인칭 ‘당신’은 결코 존대어가 될 수 없다. ‘당신’은 다만 3인칭에서는 극존대어로 쓰일 수 있다. 그러나 우리가 기도할 때 하나님은 3인칭이 될 수 없고 우리 간구를 들으시는 분으로서 2인칭에 해당되므로 ‘당신’이란 호칭은 안 된다.</span></span></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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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 </p>

<p><span style="font-size:18px;"><span style="font-family:tahoma, geneva, sans-serif;">2. 기도드렸습니다(기도하였습니다) → 기도드립니다(기도합니다)</span></span></p>

<p> </p>

<p><span style="font-size:18px;"><span style="font-family:tahoma, geneva, sans-serif;">기도를 끝낼 때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와 같이 동사 ‘기도하다’의 시제를 현재형으로 써야 하는데 요즈음 이를 ‘기도하였습니다’, ‘기도드렸습니다’와 같이 과거형을 쓰는 사람들이 점차 늘어가고 있는 것을 본다. 이는 바람직하지 못하다.</span></span></p>

<p><span style="font-size:18px;"><span style="font-family:tahoma, geneva, sans-serif;">⇒ 기도(祈禱)는 글자 그대로 그 핵심이 하나님께 아뢰는 우리의 간구다. 간구의 내용은 소원이며 소원은 미래 지향적이다. 이러한 미래 지향적인 소원을, 즉 우리의 바람을 ‘기도하였습니다’로 끝낼 수는 없다. 기도의 핵심인 간구의 내용은 그렇게 되기를 바라는 영원한 현재성을 띠고 있다. 그러므로 기도의 마무리는 과거가 아닌, 현재로 끝내는 것이 옳다.</span></span></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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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 </p>

<p><span style="font-size:18px;"><span style="font-family:tahoma, geneva, sans-serif;">3. 주여. 하나님 아버지시</span></span><span style="font-size:18px;"><span style="font-family:tahoma, geneva, sans-serif;">여 → 주님. 하나님 아버지</span></span></p>

<p> </p>

<p><span style="font-size:18px;"><span style="font-family:tahoma, geneva, sans-serif;">기도할 때 하나님을 향해 ‘주여’, ‘주님이시여’, ‘하나님이시여’, ‘하나님 아버지시여’라 부르는 것을 많이 볼 수 있는데 이것은 어법상의 문제가 있다. 즉 2인칭 존칭 명사에 호격 조사가 붙어 있기 때문이다. 현대 국어에서는 2인칭 존칭 명사에 호격 조사가 붙지 못한다. 2인칭에는 존칭이 아닌 경우에 한하여 호격 조사 ‘-아’나 ‘-야’가 붙을 수 있다. 그러므로 기도할 때 하나님은 존칭의 2인칭이 되기 때문에 이미 사어가 된 ‘-이여’, ‘-이시여’를 붙여서는 안 되고 그저 ‘주님’, ‘하나님’, ‘하나님 아버지’로 해야 옳다.</span></span></p>

<p> </p>

<p> </p>

<p><span style="font-size:18px;"><span style="font-family:tahoma, geneva, sans-serif;">4. 우리 성도님들이 → 저희들이, 교회의 권속들이…등등</span></span></p>

<p> </p>

<p><span style="font-size:18px;"><span style="font-family:tahoma, geneva, sans-serif;">국어 존대법에서는 청자(聽者)가 최상위자일 경우 다른 어떤 인물에게도 존대를 쓸 수 없다. 공중기도에서 기도 인도자는 회중과 동일한 입장, 동일한 위치에 서 있는 것이다. 즉 기도 인도자는 회중과 동격이다. 그러므로 지존하신 하나님께 드리는 기도에서 회중을 가리켜 ‘우리 성도님들’이라 존대를 해서는 안 된다. 이것은 단순히 ‘저희들’, ‘교회의 권속들’ 등으로 바꾸어야 한다.</span></span></p>

<p> </p>

<p> </p>

<p><span style="font-size:18px;"><span style="font-family:tahoma, geneva, sans-serif;">5. 대표기도 → 기도 인도</span></span></p>

<p> </p>

<p><span style="font-size:18px;"><span style="font-family:tahoma, geneva, sans-serif;">예배 순서 가운데 기도 시간이 되면 예배 인도자가 “우리를 대표해서 ooo님이 기도하시겠습니다.”, “우리를 대신해서 ooo님이 기도하시겠습니다.”와 같은 안내를 하는 것을 볼 수 있는데 이것은 적절한 표현이 못된다. 온 회중이 머리를 숙여 무언의 기도를 할 때 한 사람이 소리를 내어 기도를 할 경우 우리는 이를 ‘기도 인도’라 부르는 것이 좋다.</span></span></p>

<p><span style="font-size:18px;"><span style="font-family:tahoma, geneva, sans-serif;">⇒ 기도 인도자는 기도의 대표자가 아니다. 그는 대표로 자신의 생각을 피력하는 것이 아니며 그와 함께 머리를 숙인 온 회중의 생각을, 즉 그들의 소원을 보다 깊게, 보다 하나님 뜻에 맞게 그 절차를 정리해 주는 역할을 맡은 사람이다. 기도 인도자가 기도할 때 회중은 결코 방관자가 되어서는 안 된다. 사람들에게는 대표성이 인정될 수 있다.</span></span></p>

<p><span style="font-size:18px;"><span style="font-family:tahoma, geneva, sans-serif;">그러나 어떤 경우에도 하나님에게는 대표성이 인정될 수 없다. 만인제사장의 사상은 하나님 앞에 대표성을 인정하지 않는 신학사상이다. 이러한 관점에서도 기도에 있어서 ‘대표’, ‘대신’은 불가하다. 그러므로 ‘대표기도’, ‘대신하여 기도…’는 ‘기도 인도’로 바꾸는 것이 바람직하다.</span></span></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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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span style="font-size:18px;"><span style="font-family:tahoma, geneva, sans-serif;">6. 사랑의 예수님 → 사랑의 하나님</span></span></p>

<p> </p>

<p><span style="font-size:18px;"><span style="font-family:tahoma, geneva, sans-serif;">기도 서두에 ‘…하나님’ 대신에 ‘사랑의 예수님’, ‘고마우신 예수님’ 등으로 하나님 아버지가 아닌 예수님을 호칭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못하다. 왜냐하면 우리는 기도를 끝낼 때 반드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라고 하기 때문이다. 즉 예수님에게 우리의 소원을 아뢴 후 다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라고 하는 것은 논리적으로 맞지 않기 때문이다.</span></span></p>

<p><span style="font-size:18px;"><span style="font-family:tahoma, geneva, sans-serif;">⇒ 우리 기도는 일차적으로 성부 되신 하나님 아버지께 성자 되신 예수님 이름으로 아뢰는 것이다. 이는 예수님이 “내 이름으로 아버지께 무엇을 구하든지 다 받게 하려 함이니라”(요 15:16)고 하신 말씀에 근거를 둔다. 예수님이 우리에게 가르쳐 주신 기도도 그 서두에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로 되어 있다. 역시 이 속에도 성부 하나님의 개념이 내포돼 있다.</span></span></p>

<p> </p>

<p> </p>

<p><span style="font-size:18px;"><span style="font-family:tahoma, geneva, sans-serif;">7. 참 좋으신 하나님 → 거룩하신, 은혜로우신, 전능하신, 진실하신, 자비로우신…하나님</span></span></p>

<p> </p>

<p><span style="font-size:18px;"><span style="font-family:tahoma, geneva, sans-serif;">기도 서두에 하나님을 부르면서 그 하나님 앞에 하나님의 속성을 나타내는 수식어를 붙이는 경우가 많다. 그런데 이 하나님의 속성을 나타내는 수식어로 요즈음 ‘참 좋으신’과 같은 말이 사용되는 것을 종종 볼 수 있다. 이것은 재고를 요하는 말이라 하겠다.</span></span></p>

<p><span style="font-size:18px;"><span style="font-family:tahoma, geneva, sans-serif;">⇒ 즉 성경에 하나님의 속성을 나타내는 수식어로 쓰인 말들을 보면 ‘거룩하신’, ‘만유의’, ‘생명의’, ‘신실하신’, ‘의로우신’, ‘자비하신’, ‘영원하신’, ‘위에 계신’, ‘능력이신’, ‘진실하신’, ‘구원하시는’, ‘하늘에 계신’, ‘사유하시는’, ‘은혜로우신’, ‘보수하시는’, ‘지극히 높으신’, ‘홀로 하나이신’, ‘천지를 지으신’… 등과 같이 대부분 객관적으로 하나님의 속성을 나타내는 말들이 수식어로 쓰이고 있음을 볼 수 있다. 그런데 ‘참 좋으신’은 이 범주에 들지 않는 수식어가 된다. 즉 ‘참 좋으신’은 하나님의 속성을 나의 주관적인 감정, 정서로 느끼는 바를 표현한 말이다.</span></span></p>

<p><span style="font-size:18px;"><span style="font-family:tahoma, geneva, sans-serif;">우리가 하나님을 나의 얄팍한 주관적인 감정으로 그 속성을 표현하는 것은 문제가 있다. 이를 과장하여 발전시킨다면 ‘사랑스러운 하나님’(‘사랑의 하나님’과는 판이한 뜻이 된다.), ‘미운 하나님’, ‘야속한 하나님’, ‘귀찮은 하나님’…등도 나올 수 있기 때문이</span></span>다.</p>]]></description>
	<dc:creator>예수사랑</dc:creator>
		<dc:date>Fri, 15 Aug 2025 03:33:07 +0900</dc:date>
	</item>
	<item>
	<title>AI와 적그리스도: 마지막 때 미혹을 경계하라</title>
	<link>http://www.aion21.kr/bbs/board.php?bo_table=free&amp;wr_id=273</link>
	<description><![CDATA[<p><span style="color:#006699;"><strong><span style="font-size:18px;"><span style="font-family:tahoma, geneva, sans-serif;">[박순형 칼럼] 성경적 기준을 가지라</span></span></strong></span></p>

<p> </p>

<p><span style="color:#ff6600;"><strong><span style="font-size:18px;"><span style="font-family:tahoma, geneva, sans-serif;">뇌에 칩 심어 사람 생각 통제<br />
안 심는 사람들 고통 당할 것<br />
AI, 강제로 신앙 빼앗을 수도<br />
도덕과 윤리까지 AI가 결정?<br />
성경적 가치관 완전히 무너져<br />
거짓 가르침과 미혹 대비해야</span></span></strong></span></p>

<p> </p>

<p> </p>

<p><span style="color:#ff6600;"><strong><span style="font-size:18px;"><span style="font-family:tahoma, geneva, sans-serif;"><a href="http://www.aion21.kr/bbs/view_image.php?fn=%2Fdata%2Feditor%2F2506%2F3232235521_1748778796.8.jpg" target="_blank" class="view_image"><img itemprop="image" content="http://www.aion21.kr/data/editor/2506/3232235521_1748778796.8.jpg" src="http://www.aion21.kr/data/editor/2506/3232235521_1748778796.8.jpg" alt="" class="img-tag " style="width:640px;"/></a></span></span></strong></span></p>

<p><span style="font-size:14px;"><span style="font-family:tahoma, geneva, sans-serif;"><strong>▲CES 2025 속 AI 기술 관련 보도 화면. ⓒKBS</strong></span></span></p>

<p> </p>

<p> </p>

<p><span style="color:#000000;"><span style="font-size:18px;"><span style="font-family:tahoma, geneva, sans-serif;">성경은 마지막 때에 적그리스도가 등장해 온 세상을 미혹하고 하나님을 대적할 것이라 예언하고 있습니다. 하나님과 대적하기 위해, 사탄은 AI가 발전하면 할수록 그것을 적그리스도의 도구로 활용하려 할 것입니다. 그리고 이를 통해 적그리스도의 권세를 강화하고, 전 세계를 통제하며, 사람들을 하나님으로부터 멀어지게 만들려 할 것입니다.</span></span></span></p>

<p> </p>

<p> </p>

<p><span style="color:#000000;"><span style="font-size:18px;"><span style="font-family:tahoma, geneva, sans-serif;">사람들을 통제하는 가장 효과적인 방법은 경제활동에 제약을 가하는 것입니다. 이를 위해 적그리스도는 강력한 정치적·경제적 통제를 하려 할 것이고, AI는 전 세계적인 감시 및 통제 시스템을 구축해 이러한 역할을 도울 것입니다.</span></span></span></p>

<p> </p>

<p> </p>

<p><span style="color:#000000;"><span style="font-size:18px;"><span style="font-family:tahoma, geneva, sans-serif;">CES(Consumer Electronics Show·미국 소비자기술협회)가 매년 1월 여는 국제전자제품 박람회 -편집자 주)에서는 올해 사람이 머릿속으로 생각하는 것만으로 전자기기를 조작하는 기술을 선보였습니다. 이는 뇌에 심은 작은 전자칩에서 발생하는 뇌파를 컴퓨터에 전송하는 뇌-컴퓨터 인터페이스(BCI) 기술입니다.</span></span></span></p>

<p> </p>

<p> </p>

<p><span style="color:#000000;"><span style="font-size:18px;"><span style="font-family:tahoma, geneva, sans-serif;">이러한 기술이 보편화되면 사람 간에 등급이 생길 가능성이 있습니다. 즉 그 칩을 심는 사람과 심지 않는 사람 간의 차별입니다. 전자칩을 심지 않은 사람들은 사회생활이나 경제활동을 수행하는 데 큰 제약을 받게 될 것입니다.</span></span></span></p>

<p> </p>

<p> </p>

<p><span style="color:#000000;"><span style="font-size:18px;"><span style="font-family:tahoma, geneva, sans-serif;">예를 들어 공공기관을 이용할 수도, 은행 거래를 할 수도, 심지어 대중교통을 이용할 수도 없는 시대가 올 것입니다. 그러면 그 칩을 거부하는 사람이 받는 불편함과 고통은 이루 말할 수 없을 것입니다.</span></span></span></p>

<p> </p>

<p><span style="color:#000000;"><span style="font-size:18px;"><span style="font-family:tahoma, geneva, sans-serif;">마치 로마 황제에게 절하지 않으면 경제활동이 전면 중지됐던 로마 박해 시대보다 더 큰 시련이 올 수도 있습니다. 이는 마치 요한계시록 13장 16-17절에 기록된 바와 같이 “이마에 표를 받게 하고 누구든지 이 표를 가진 자 외에는 매매를 못하게 하더라”는 말씀이 연상됩니다.</span></span></span></p>

<p> </p>

<p> </p>

<p><span style="color:#000000;"><span style="font-size:18px;"><span style="font-family:tahoma, geneva, sans-serif;">머리에 심는 칩과 이마의 표를 연결 짓는 것은 억지 논리라고 할 수 있겠지만, 머리에 칩을 심는 것에 거부감을 가지는 사람들이 많기 때문에 이마에 간단하게 심을 수 있는 기술이 발전될 수도 있습니다.</span></span></span></p>

<p> </p>

<p><span style="color:#000000;"><span style="font-size:18px;"><span style="font-family:tahoma, geneva, sans-serif;">성경을 해석할 때 이러한 물리적인 것만 따질 것이 아니라, 그 이면에 있는 소프트웨어적 부분을 더 고려해야 합니다. 이러한 칩을 심지 않는 사람들이 받는 고통입니다. 이 고통은 박해 수준이며, 이는 환란과 같습니다.</span></span></span></p>

<p> </p>

<p> </p>

<p><span style="color:#000000;"><span style="font-size:18px;"><span style="font-family:tahoma, geneva, sans-serif;">다니엘서 12장 1절에 “종말의 시대에 환난이 있으리니 이는 개국 이래로 그때까지 없던 환난일 것”이라 예언하고, 마태복음 24장 21절에도 “그때에 큰 환난이 있겠음이라 창세로부터 지금까지 이런 환난이 없었고 후에도 없으리라”고 기록하고 있습니다.</span></span></span></p>

<p> </p>

<p><span style="color:#000000;"><span style="font-size:18px;"><span style="font-family:tahoma, geneva, sans-serif;">또 다니엘서 12장 1절에서는 “그 환난이 있을 그때에 생명책에 기록된 모든 자가 구원을 받을 것이라”고, 마태복음 24장 22절에서는 “택하신 자들을 위하여 그날들을 감하시리라”고 합니다.</span></span></span></p>

<p> </p>

<p> </p>

<p><span style="color:#000000;"><span style="font-size:18px;"><span style="font-family:tahoma, geneva, sans-serif;">이처럼 사탄은 사람들 머리에 칩을 심게 해, 거대한 통제 시스템을 구축할 것입니다. 하나님을 비난하는 거짓 정보를 그 칩을 통해 동시에 사람들에게 전송시킬 수도 있습니다. 이런 식으로 사람들을 세뇌하는 것입니다.</span></span></span></p>

<p> </p>

<p><span style="color:#000000;"><span style="font-size:18px;"><span style="font-family:tahoma, geneva, sans-serif;">이처럼 AI로 하여금 거짓 정보를 생산해 퍼뜨리고, 사람들의 생각을 통제하는 도구로 사용할 것입니다. 이는 하나님을 믿고 따르는 자들을 강제적으로 믿지 못하게 하는 엄청난 박해 사건이 될 것입니다.</span></span></span></p>

<p> </p>

<p> </p>

<p><span style="color:#000000;"><span style="font-size:18px;"><span style="font-family:tahoma, geneva, sans-serif;">물론 처음에는 미래 예측, 질병 치료, 복잡한 문제 해결 등의 기능을 제공함으로써 경계심을 해제시킬 것입니다. 그러나 차츰 적그리스도는 자신의 야욕을 드러낼 것입니다. 그리고 AI가 인간 윤리를 결정하는 기능까지 가지게 되면, 성경적 가치관을 완전하게 무너뜨릴 가능성이 더욱 커집니다.</span></span></span></p>

<p> </p>

<p><span style="color:#000000;"><span style="font-size:18px;"><span style="font-family:tahoma, geneva, sans-serif;">특히 AI가 도덕과 윤리를 판단하는 기준이 된다면, 하나님이 정하신 절대적 기준이 사라지고 상대적 도덕이 확산될 것입니다. 성경은 이러한 미혹에 대비하라고 우리에게 경고합니다.</span></span></span></p>

<p> </p>

<p><span style="color:#000000;"><span style="font-size:18px;"><span style="font-family:tahoma, geneva, sans-serif;">마태복음 24장 24절에 “거짓 그리스도들과 거짓 선지자들이 일어나 큰 표적과 기적을 보여 할 수만 있으면 택하신 자들도 미혹하게 하리라” 말씀하면서, 하나님의 절대적 기준을 왜곡하는 시대가 도래할 가능성이 있으므로 거짓된 가르침과 미혹에 대비하라고 강조하고 있습니다.</span></span></span></p>

<p> </p>

<p> </p>

<p><span style="color:#000000;"><span style="font-size:18px;"><span style="font-family:tahoma, geneva, sans-serif;">그러므로 우리는 AI가 제공하는 정보를 무조건 의존해서는 안 되며, 성경적 기준으로 판단해야 합니다. AI가 발전할수록 성경 진리를 굳건히 붙잡고, 영적 분별력을 키우는 것이 어느 때보다 중요한 시대가 다가오고 있습니다.</span></span></span></p>

<p> </p>

<p> </p>

<p> </p>

<p><span style="color:#006699;"><span style="font-size:18px;"><span style="font-family:tahoma, geneva, sans-serif;">박순형 목사</span></span></span></p>

<p> </p>

<p><span style="color:#006699;"><span style="font-size:18px;"><span style="font-family:tahoma, geneva, sans-serif;">웨이크신학원 교수<br />
‘AI 시대 과학과 성경’ 강의</span></span></span></p>

<p><span style="color:#006699;"><span style="font-size:18px;"><span style="font-family:tahoma, geneva, sans-serif;">국제독립교회연합회 서기<br />
극동방송 칼럼. 국민일보 오늘의 QT 연재<br />
(주)아시아경제산업연구소 대표이사<br />
이학박사(Ph.D.)<br />
아세아연합신학대학원(M.Div)<br />
필리아교회 담임</span></span></span></p>]]></description>
	<dc:creator>선한목자</dc:creator>
		<dc:date>Sun, 01 Jun 2025 20:56:54 +0900</dc:date>
	</item>
	<item>
	<title>[CBS 뉴스] 사랑침례 정동수 목사 이번엔 이단규정 되나?</title>
	<link>http://www.aion21.kr/bbs/board.php?bo_table=free&amp;wr_id=272</link>
	<description><![CDATA[<iframe width="640" height="360" src="https://www.youtube.com/embed/cMYhZYPUiFA?autohide=1&vq=hd720&wmode=opaque" frameborder="0" allowfullscreen webkitallowfullscreen mozallowfullscreen></iframe><p> </p>

<p><span style="font-size:18px;"><span style="font-family:tahoma, geneva, sans-serif;"><strong>[CBS 뉴스] 사랑침례 정동수 목사 이번엔 이단규정 되나?</strong></span></span></p>]]></description>
	<dc:creator>선한목자</dc:creator>
		<dc:date>Tue, 27 May 2025 11:45:04 +0900</dc:date>
	</item>
	<item>
	<title>‘도를 아십니까?’ 말고 ‘교회 다니세요?’ 외치는 이단들...“기독교와는 무관” (이현지) l CTS뉴스</title>
	<link>http://www.aion21.kr/bbs/board.php?bo_table=free&amp;wr_id=271</link>
	<description><![CDATA[<iframe width="640" height="360" src="https://www.youtube.com/embed/AgxL1WY5yp4?autohide=1&vq=hd720&wmode=opaque" frameborder="0" allowfullscreen webkitallowfullscreen mozallowfullscreen></iframe><p> </p>

<p><span style="font-size:18px;"><span style="font-family:tahoma, geneva, sans-serif;"><strong>‘도를 아십니까?’ 말고 ‘교회 다니세요?’ 외치는 이단들...“기독교와는 무관” (이현지) l CTS뉴스</strong></span></span></p>]]></description>
	<dc:creator>선한목자</dc:creator>
		<dc:date>Tue, 27 May 2025 11:43:30 +0900</dc: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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